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검 보고서 공개 이후 미국 민주당이 골치를 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특검 조사를 방해한 정황이 드러나긴 했으나 명백한 위법으로 판단하지 않은 애매한 결론 탓에 탄핵 추진 여부를 두고 내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추진이 초래할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진보 성향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들끓고 있는 탄핵론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민주당은 22일(현지시간) 90분에 걸쳐 전화회의(컨퍼런스 콜)를 갖고 특검 보고서 공개 이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175명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즉각적인 탄핵 추진론과 시기 상조론이 맞서며 골 깊은 갈등을 드러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이 전했다. 신중론자들은 공화당의 비협조로 탄핵 추진이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돕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강경파들은 의회가 탄핵에 나서지 않으면 대통령의 심각한 비행이 용인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란 입장이다.
법사위 소속으로 경찰 서장 출신인 발 데밍스 의원(플로리다)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수많은 법을 위반한 명백한 증거들을 확보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제러드 허프만 의원(캘리포니아)은 탄핵 추진시의 정치적 역풍 만이 아니라 탄핵을 추진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며 탄핵 추진에 힘을 보탰다. 반면 중도층이 많은 지역구 의원들은 민생 문제를 무시하고 탄핵에만 집중하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크리시 훌라한(펜실베이니아) 의원은 “초선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킨 그 (민생) 의제들이 입법화하기를 우리 지역민들은 원한다”면서 “탄핵 절차에 들어가면 여러 의문을 제기할 기회를 잃게 되는데, 아직은 해답 보다는 질문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펠로시 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앞서 충분한 증거가 확보될 때까지 의회 차원의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엘리자 커밍스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장(메릴랜드)은 “윌리엄 바 법무장관과 뮬러 특검을 청문회에 출석시켜 더 듣고 편집되지 않은 특검 보고서 원본을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도부 중 탄핵을 강력 지지해온 맥신 워터스 하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탄핵 추진에 동조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다른 의원들에게 이를 강요하지는 않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현재로서는 성급한 탄핵추진보다는 엄중한 감시가 현명한 방책이라고 지적하며 수위 조절에 나섰다.
이런 지도부의 설득에 불구하고 일부 강성 의원들은 이날 회의를 시간 낭비라고 부르며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고 의회 전문 매체 힐이 전했다. 한 의원은 “펠로시 의장이 뭐라고 하든 상관 없다”며 “상당수 의원들이 탄핵 추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판단하면 지도부는 따라 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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