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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뮬러 특검과 피의사실 공표

입력
2019.04.23 18:00
수정
2019.04.23 18: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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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뮬러 특검 보고서 공방을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 놀라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2년 가까이 수사를 했지만 피의사실이 일절 공개되지 않은 점이다. 기자 4명을 특검 사무실 인근에 ‘뻗치기’시킨 CNN도 카메라에 잡힌 소환자를 단서로 특종 몇 개를 건졌을 뿐이다. CNN 기자는 취재기에서 뮬러 특검은 ‘노 리크’(No Leak, 발설 금지) 지침을 지켰고, 취재진은 수사 관련 질문을 할 생각도 않고 안부 인사만 나눴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수사결과 발표 전에 사건의 전모가 거의 언론에 공개됐을 것이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두 가지 혐의 중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공모한 의혹은 ‘노’, 수사를 막으려 한 사법방해 의혹은 ‘예스’에 가깝다. 뮬러 특검의 이런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자 그의 지지도는 39%까지 내려와 있다. 그나마 특검의 침묵과 트럼프의 물타기가 여론에 작용한 수치다. 특검 수사 중에 자세한 혐의가 반트럼프 진영에 흘러갔다면 탄핵 여론은 비등했을 것이다. 사실 피의사실이 공개돼 정치·사회적으로 이용되거나 물의를 빚는 게 미국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고, 법으로 이를 금하지도 않고 있다.

□ 미국에서도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진의 의도적 흘리기와 언론의 취재가 부합한 결과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 사건에서 언론은 수사진 발언과 빼낸 증거로 유죄 심증을 굳힌 기사를 쏟아냈다. 이후 피고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무장관 카젠바흐의 지침이 처음 마련된다. 법 집행 공무원은 편견을 주거나 혐의와 무관한 피의자의 성격, 진술, 유죄에 대한 의견, 증인 관련 사항을 언론에 제공할 수 없고 명백한 것만 제공하라는 것이다.

□ 우리 형법 제126조는 피의사실을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효성 논란이 크고, 유사 규정을 둔 독일, 오스트리아도 적용 사례가 드물다. 과거에 의혹 보도는 국민의 숨쉴 공간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부패 구조를 걷어내기 위한 여론 조성도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 사법농단 사건 등에서조차 이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피의사실이 사전 공개되면 재판도 받기 전에 유죄가 되고, 재판은 이를 추인하는 절차가 된다. 피의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국민 알 권리의 적정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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