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판결ㆍ초계기 등 열거하며 자국 주장만… 수산물 수입 재개 요구도
일본 정부가 2019년도 외교청서에서 한국과의 갈등을 부각한 반면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기존의 부정적인 표현을 삭제하거나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를 반영한 것이지만 관계악화 책임을 한국에 전가했다. 그러면서 자국이 패소한 세계무역기구(WTO) 판정을 존중하지 않은 채 한국에 후쿠시마(福島) 주변산 수산물 수입금지 규제 완화ㆍ철폐를 요구하는 등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외교적 공세에 우리 정부는 강하게 반박했지만, 일본이 공세로 느낄 만한 대응책은 내놓지 않았다.
23일 각의(국무회의)에 보고된 2019년도 외교청서는 한국과의 관계에서 갈등 요인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대법원 판결과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한국 의원들의 독도 상륙,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논란, 레이더ㆍ위협비행 갈등을 열거, “한국 측에 의한 부정적인 움직임들이 잇따르고 있어 한일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외교청서에 기술된 “상호신뢰 하에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인 신시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표현은 삭제됐다. “한국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는 내용도 지난해 이후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1,000만 시대로 접어든 민간 교류에 대해선 긍정 평가했다.
갈등 현안에선 자국 입장을 거듭 주장했다.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 “명백한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2쪽에 걸쳐 상세히 소개하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의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재판의 원고 측을 설명하면서 그간 사용한 ‘구(舊) 민간인 징용공’이란 표현을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꿨다. 원고 측이 징용 노동자가 아니라는 일본 측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동해 호칭에 대해선 “일본해가 국제적으로 확립된 유일한 호칭”이라고 기술했다.
대신 한국을 제외한 주변국에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북한에 대해선 지난해 기술한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일 것”이란 표현이 삭제됐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을 추가했다. 중국에 대해선 센카쿠(尖閣ㆍ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한 우려를 기술하면서도 “관계 개선을 계속 추진하고, 동중국해를 ‘평화ㆍ협력ㆍ우호의 바다’가 되도록 의사소통을 강화해 나간다”고 했다. 지난해 아베 총리의 방중 등을 통해 중일관계가 정상궤도에 올라 새로운 발전을 지향하는 단계로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압박은 다른 쪽에서도 이뤄졌다. 이날 도쿄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도 후쿠시마 주변산 수산물 수입 재개를 요구했다. ‘다함께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70여명은 춘계례대제를 맞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일 무역갈등에 대한 국제기구의 판정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과거사와 관련해 한국의 입장을 무시하는 행동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전날에는 레이더ㆍ위협비행 갈등 이후 한국 군의 새로운 대응지침과 관련한 양국의 비공개 협의 내용이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갈등 관리를 위해 물밑에서 진행되던 내용이 공개된 것은 되레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외교부는 일본 외교청서와 관련해 마즈시마 고이치(水嶋光一)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 독도 영유권ㆍ위안부ㆍ강제징용ㆍ동해 표기 등과 관련한 일본 측 주장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 의원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서도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김용길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은 수산물 수입 재개 요구에 대해선 “WTO 판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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