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에서 톈안먼을 연상하는 중국인
“우린 99%” 와 맞닿는 상징 “흙수저”
배제의 논리는 혁명 의미를 퇴색시켜
하나를 보고 여럿이 두루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걸 보편적(universal)이라고 한다. 또 중국인이 나에게 그 영화 얘기를 했다.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2017). 학부 2학년 대상의 국제 리포팅 수업이 끝난 뒤, 그는 강의실을 쫓아나오며 그 영화를 봤냐고 물었다. ‘택시운전사’는 넷플릭스에서 ‘A Taxi Driver’란 제목으로 볼 수 있었다. 전에 다른 중국인은 자기네 부부가 이 영화를 보고 밤늦도록 토론을 했다고 토로했다. 영화 내내 ‘우리에게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수업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을 통해 뉴스의 파급 효과, 취재원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4월 22일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추모 행사를 기점으로 시위는 광장에서 전국으로 확산됐고, 6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인민해방군의 무차별 유혈 진압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창안(長安)거리를 전진하는 T-59 전차 종대를 와이셔츠 차림의 한 남자가 혼자 막아섰다. 베이징호텔에 있던 외신 기자들이 이 놀라운 장면을 망원렌즈로 잡은 영상이 ‘탱크맨’이다. 사진과 비디오는 검색을 피해 화장실에 숨겨지고 유학생 짐 속에 담겨 세계로 퍼졌다. 그가 누군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영상은 몇 달 뒤 루마니아인이 독재자 차우셰스쿠에 맞서고 독일인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릴 용기를 줬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가치라고 믿던 때의 일이다.
30년 뒤인 지금 중국은 광장의 시민들이 상상도 못한 부국이 됐다. 중국에선 톈안먼 사건 언급은 금지됐고 사건을 상징하는 1989 또는 64란 숫자는 검색도 되지 않는다. “모든 정치적인 것의 배경이면서, 역사에선 사라진 기억의 공백”(휴먼라이츠워치)과 같다. 중국은 현대화란 서구화가 결코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미국에선 자유주의의 퇴각과 실패가 가장 흔한 연구 주제가 된 시대다. 정치의 가치가 보편에서 특수(particular)로 역전한 이때에 영화 ‘택시운전사’가 톈안문 사건을 일깨우는 게 도리어 별난 일이다. 그만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관련된 사람들이 한 방향의 리더십으로 조금씩 만들어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네 가지 가치를 얘기하곤 했다. 연설 내용을 즉석에서 가감하는 경우가 많았던 그이지만, 이건 더하거나 빼지 않았다. 5·18 광주는 인권, 비폭력, 시민정신, 평화라고 했다. 당시 광주에서 시민들은 김대중 석방 구호를 외쳤고, 자신의 사형 선고가 5·18 배후 조종 혐의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운동을 스스로는 물론 어느 개인, 또는 집단으로 귀속시키지 않았다.
1989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분출한 뒤 30년, 세계는 반작용과 혼란으로 점철됐다. 촛불혁명이 어디에 자리매김할지 불투명하다. 처음 서울광장에서 반칙과 농단에 대한 항의가 일어날 때, 그 흙수저의 분노는 분명 보편적 가치였다. 자코티 공원에서 일어난 월가 시위의 구호 “우린 99%” 와 맞닿을 뿐 아니라, 실패로 끝난 월가 시위의 교훈을 살려냈다. 그런데 지금 흙수저의 가치가 어디로 갔는가?
세계 곳곳에서 배제의 정치가 보편화하는 게 역설적인 현실이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가 책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에서 배제의 논리를 압축했다. “이것은 우리의 상징이고, 전통이며, 유산이고, 외부인은 그에 대한 권리가 없다.”(These are our group’s symbols, traditions, patrimony, and out-group members have no right to them)” 이런 정치의 가치는 우리가 뭘 원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아닌 것, 우리가 적대하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역사는 집단에 맞는 특수한 역사가 되고 적을 만들기 위해 수정된다. 촛불 대통령이란 말이 “감히” 나오고, 친일파란 상상의 개념이 현실의 적으로 취급되는 게 공식에 맞아 간다. 촛불 이후 리더십이 혁명을 한없이 작게 만들고 있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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