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충북 청주에서 부활하고 있다. 무대는 세계 3대 광천수로 이름난 초정약수 고을이다.
초정약수는 세종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세종은 지병인 안질을 고치기 위해 즉위 26년(1444년) 청주목 초수리(지금의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를 찾았다.
이곳에 행궁(왕이 본궁 밖으로 나가 머무는 임시 궁궐)을 짓고 123일간 머물며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했다. 세종은 초정에서 치료만 한 게 아니었다. 당시는 훈민정음 반포(1446년)를 앞두고 사대주의에 빠진 신하들의 반대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세종실록(즉위 26년 2월 20일)에 기록된 최만리 상소에는 ‘언문 같은 것은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마쳐야 하는 것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초정행궁)에서 급급하게 하시어’란 대목이 나온다. 세종이 초정행궁에서 한글 창제의 마무리 작업에 몰두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행궁은 지금의 내수읍 초정리 어딘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를 열고 있다. 세종의 애민 정신을 계승하고 세종의 숨결이 남아있는 초정약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축제다. 13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는 5월 31일부터 6월 2일가지 초정리 초정문화공원 일원에서 ‘세종, 행궁에 들다’란 주제로 진행한다.
축제의 백미는 세종이 한양을 떠나 초정리에 도착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어가행렬이다. 행사 둘째 날인 6월 1일 초정리 주변 2km에서 펼쳐지는 이 행사에는 지역 대학생 등이 호위무사, 신하, 궁녀, 장군 등으로 출연한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전국 공모를 통해 선발한다. 청주시는 축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일주일 전인 5월 25일 청주 도심 성안길에서 사전 어가행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어가 앞 뒤로는 농악대 길놀이팀이 배치돼 신명나는 농악을 선사한다. 이번 어가행렬은 되도록 소박하게 준비할 참이다. 세종의 애민 정신을 본받기 위해서다. 세종은 백성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가행차를 조용히 꾸렸다고 전해온다.
축제장은 조선 초기 저잣거리로 변신해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을 제공한다. 조선 상인들이 전통공예품을 판매하고, 장터에서는 포목점 소리꾼집 붓제작소 대장간 주막 등을 만날 수 있다. 임금님 탕실과 중전마마 분전, 수라간 등도 설치해 세종이 초정행궁을 차렸을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마당에서는 어르신들이 행궁, 약수에 얽힌 생생한 얘기를 들려주고, 초정약수 마당에선 족욕, 눈ㆍ귀 씻기, 약수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초정약수는 시음대에서 맘껏 마실 수 있다.
청주시는 관람객 편의를 돕기 위해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시내와 초정리를 잇는 셔틀버스를 운영한다. 1코스는 청주종합운동장→상당공원→내덕칠거리→수름재카풀주자창→축제장, 2코스는 청주시외버스터미널→복대동 지웰시티→내수읍사무소→축제장, 3코스는 청주문화원→분평사거리→용암동 청주농협사거리→축제장이다.
청주시는 초정약수 관광명소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초정약수는 미국 샤스타, 영국 나포리나스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광천수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체계적인 관리 부족과 무분별한 지하수 채취로 인해 그 명성이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 이에 시는 초정약수의 명성을 되살리는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초정행궁 복원 사업이다. 총 155억 원의 예산을 들이는 행궁은 초정리 일원 3만 8,000㎡에 건축면적 2,055㎡규모로 건립한다. 35개에 달하는 건축물은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창의적이면서도 전통의 맛을 살린 한옥 형태로 설계됐다. 전체적인 복원 사업은 진입, 행궁, 숙박, 공원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진입 영역에는 광장과 안내센터, 어가를 전시하는 사복청, 무기를 전시하는 사장청이 들어선다. 행궁 영역에는 야외 족욕체험이 가능한 원탕행각을 비롯해 탕실과 침전, 편전, 왕자방, 수라간, 집현전 등이 자리 잡는다. 숙박 영역에는 전통 한옥을 건립해 관람객들에게 대여한다. 공원 영역은 산책로와 연못, 축제 공간으로 꾸민다.
지난해 9월 첫 삽을 뜬 복원 공사는 4월말 현재 75%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청주시는 올해 말까지 공사를 마치고 복원한 행궁을 내년 초 개방할 계획이다.
초정약수 명소화 사업은 최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주관한 ‘2019지역발전투자협약 시범사업’ 공모에 선정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이 공모사업 선정으로 청주시는 초정리 관광개발 사업에 드는 국비 200억 원을 확보했다. 시는 5월 중 중앙부처와 지역발전투자 협약을 한 뒤 6월부터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시는 초정광천수의 체계적인 보전과 관리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치유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근 좌구산휴양림과 연결해 환경과 관광이 어우러진 미래형 관광산업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세계 3대 광천수의 브랜드 가치를 회복하고 세종대왕 행궁을 접목해 초정약수를 청주의 대표 문화관광 명소로 육성하겠다”며 “올해 세종대왕과 약수축제는 이런 청사진을 펼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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