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이란산 수입 금지… 내달 2일 180일 유예기간 종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산 원유 수입 제재와 관련해 한국 등 8개국에 대해 인정했던 한시적 예외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백악관이 22일(현지시간) 밝혔다. 대(對) 이란 압박의 고삐를 죄기 위해 ‘이란산 원유 수입 제로’라는 초강수를 두는 것으로 국제 유가 시장 에 대한 충격뿐만 아니라 중국 등 이란산 원유 수입국과의 긴장 고조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오전 공식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미 주요 언론들도 전날 이러한 내용의 보도를 일제히 쏟아냈다. 국무부는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오전 8시45분 기자회견을 갖는다고 사전 공지했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은 “미국이 이란 핵 합의 탈퇴를 결정한 지 약 1년만에 국무부는 모든 나라가 이란산 석유의 수입을 완전히 끝내거나 아니면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다른 매체도 예외 조치를 종료할 것이라고 전했다. AP통신은 다만 이들 국가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서서히 줄일 추가 시간을 줄지, 아니면 바로 다음달 3일부터 당장 수입을 중단하지 않으면 미국이 제재를 가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미 구매했거나 구매에 합의한 원유를 인도하는 기간을 허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으나 어떤 방식으로 이행될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인도 일본 터키 대만 이탈리아 그리스 등 8개국에 대해 180일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 대만 이탈리아 그리스는 올해 들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완전히 중단해 중국 인도 한국 일본 터키 등 5개국이 실질적인 예외 혜택을 받아왔다. 블룸버그의 유조선 추적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중국이 하루 평균 61만3,000배럴의 원유를 수입해 가장 많았고 한국 38만7,000배럴, 인도 25만8,000배럴, 일본 10만8,000배럴, 터키 9만7,000배럴로 뒤를 이었다.
이들 국가들은 내달 2일 종료되는 이 조치를 연장해 줄 것을 요구해 왔으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보보좌관 등 대이란 강경파들이 종료를 밀어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에는 23명의 공화당 상원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외 조치 종료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국무부 관계자는 WP에 “폼페이오 장관도 시장 조건이 허락하면 예외 조치를 종료할 의향을 항상 갖고 있었다”며 “이란산 수입 제로 정책은 폼페이오 장관에서 비롯됐다”고 전했다.
국무부 내에서는 연장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등 지난 몇 주간 정부 내에선 논쟁이 벌어졌으나 강경파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19일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유가 상승이 대선 재선 가도에 불리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전면 제재가 부담스럽지만, 국제 유가 시장 상황이 지난해보다 양호하다는 점을 내세워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 훅 이란 특별대표는 이달 초 언론브리핑에서 “올해는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기 때문에 ‘이란산 원유 수입 제로’ 정책을 가속화하는 데 좋은 시장 조건이 조성됐다”며 “우리는 제재 체제에 면제나 예외를 승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폼페이오 장관은 22일 기자회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이 이란산 원유 상쇄를 위해 증산에 나설 것으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밝힐 것이라고 WP 등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및 모하메드 빈자예드 UAE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가졌다.
트럼프 정부가 국제 유가 시장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당장 이날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유가 상승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NYT는 중동 지역의 석유 전문가들이 고유가에 의존하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즉각적인 증산에 나설지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며 유예 조치 중단이 유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대응도 변수다. 미중 무역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 대북 제재에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이란산 원유 수입 문제까지 가중돼 미중 간 힘겨루기가 복잡해질 수 있다.
이 같은 위험 요소에도 불구하고 이란 문제가 내년 대선 레이스에서 민주당 후보와 충돌하는 핵심 쟁점 중 하나라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강경 드라이브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버락 오마바 전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였던 이란과의 핵합의를 폐기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정책 실패를 겨냥하는 민주당 후보의 공세에 맞서 이란 압박의 가시적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란 문제마저 원점을 맴돌면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울 만한 외교적 업적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우라늄 농축 중단 등 12개 요구사항을 담은 새로운 합의를 이란에 제의했으나 이란은 핵 문제에 대한 재협상 자체를 거부해 왔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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