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출산 후 빠른 팀 복귀… 3경기 연속 풀타임 소화 맹활약
기량 회복·육아… 가족의 전폭 지원 “당장 프랑스 가도 부족함 없는 실력”
캐나다 월드컵 경기 중 청혼 받아 3차전 스페인 이기고 16강 진출도
서울시청과 화천KSPO의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2라운드가 열린 지난 18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선 200여 명의 리그 등록 선수 가운데 유일한 ‘엄마 선수’인 황보람(32)이 풀타임 활약했다. 출산은 곧 은퇴로 여겨져 온 국내 여자축구 무대에 출산 이듬해 복귀한 것 자체가 드문데, 기량 또한 전성기 때 못지 않으니 여기저기서 그의 활약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사흘 전 창녕WFC와 시즌 개막전에서 풀타임을 뛰며 팀의 3-1 승리에 힘을 보탠 그가 이날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3-3 무승부를 지켜내자 한 축구관계자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출산 후에도)실력이 여전하다”라면서 “당장 월드컵 무대에 세워도 부족함 없을 실력”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22일 열린 구미 스포츠토토와 원정 경기에서도 주장완장을 차고 풀타임 출전, 철통수비를 펼치며 무실점(0-0)경기를 펼쳤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만난 황보람은 “지난해 2월 딸을 출산한 뒤 곧바로 그라운드 복귀를 준비했다”며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여자월드컵 대표팀에 꼭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신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결혼 후 출산과 선수생활을 두고 저울질 하다 출산을 택한 뒤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선배들의 많은 응원을 받았다”며 “앞으로 같은 고민을 할 후배들에게 보다 나은 선택지를 내놓고 싶어 여자월드컵 무대에 다시 도전하려 한다”고 했다. 많은 움직임과 격한 몸싸움이 뒤따르는 구기종목에서 ‘엄마 선수의 한계’를 논하는 이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셈이다.
실제 한국 구기종목 선수가운데 99%가 출산 후 경력단절을 겪는다. 지난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첫째 자녀 임신 취업 여성의 경력단절률(66%)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사실 99%란 수치조차 황보람처럼 출산 후 복귀한 선수가 ‘아예 없진 않아서’ 붙은 수치로, 지금은 해체된 이천 대교에서 황보람과 함께 뛴 홍경숙(35) 정도만 기억될 뿐 아이를 낳고 그라운드에 복귀했단 선수는 거의 없는 실정이란 게 여자축구연맹 관계자 설명이다. 사정은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농구나 배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황보람은 “다시 축구장을 누빌 수 있게 된 건 어머니와 남편 등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했다. 남편 이두희(35)씨는 황보람이 4년 전 캐나다 여자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경기장에서 깜짝 프러포즈를 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조별리그 2차전 경기 후 관중석에서 ‘보람아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적힌 손 피켓을 들며 프러포즈 했고, 황보람은 그가 건넨 풍선을 받아 들며 청혼을 수락했다. 황보람은 “그 날 코스타리카와 무승부(2-2)를 거두는 바람에 1무1패가 돼 16강 진출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이었다”며 “남편이 너무 눈치 없이 청혼해 마냥 기뻐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당시 남편의 깜짝 프러포즈에 힘을 얻은 황보람은 3차전에서 스페인을 틀어막는 데 힘을 보태 2-1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다. 그는 “결혼 후에도 내가 축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육아를 책임져 주는 남편과 시어머니께 너무 고마운 마음”이라며 활짝 웃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남편은 결혼 전이나 후나 황보람이 대전과 가까운 지역에서 경기할 때마다 응원을 온단다.
그의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은 화천 강재순 감독도 매한가지다. 황보람이 출산한 뒤 빠르게 기량을 회복하기까진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란 게 강 감독 얘기다. 실제 황보람은 출산 후 필라테스 헬스 등을 통해 출산 이전 수준의 컨디션을 되찾았다. 강 감독은 “체력이 관건이지만 현재 경기력과 회복 추세로 봐선 여자월드컵 무대에서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자신의 복귀를 응원하는 후배들에게 요즘 결혼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는 황보람은 “후배들이 남자친구를 만날 기회가 너무 없다”며 안타까운 마음도 전했다. 강 감독은 “남자들이 몰라서 그렇지 여자축구 선수가 신붓감으론 최고”라며 거들었다. 오랜 단체생활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고, 아내와 축구를 하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단 이유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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