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인의 딸은 5년 전 고2였다. 동년배 학생 250여명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긴 사건은 어린 학생의 인생관을 바꿀 정도로 큰 충격을 줬다. 대학생인 지금도 가방에 항상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그는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거리에서 훈계를 듣는다.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그걸 달고 다니냐” “세월호 유족들이 돈을 얼마나 받은 줄 아냐” 등등. 심지어 동년배 중에도 “정치병 걸렸냐”고 비꼬는 사람이 있단다.
모르는 사람을 길에서 불러서까지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가 얼마나 무례한지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무례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당하다. 이들에겐 세월호 참사 당일에 공개적으로 유가족 가슴에 비수를 꽂은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막말이 오히려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바로 다음 해에 세월호 유족과 5ㆍ18 유공자 등을 ‘빨갱이’로 지칭하고 이들이 막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가짜뉴스를 마치 사실인양 퍼뜨려 지탄을 받은 시의원이 있었다. “나라가 빨갱이 보상으로 망하기 일보직전”이라던 이 사람의 글에서 세월호 유족에 대한 혐오의 뿌리를 본다.
이들에게 빨갱이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가진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약자인데 가만히 있지 않으면 빨갱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해 지방 선거 당시 “창원에 빨갱이가 많다”고 한 뒤 비판을 받자 “경상도에서는 반대만 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한다”고 ‘해명’했다.
세월호 유족, 5ㆍ18 유공자에게 빨갱이란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 치고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부 시절 독재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드물다. 외려 ‘삼청교육대를 부활시켜야 한다’며 무고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거나 시설에 가두어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한 것을 ‘업적’이라 칭송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속내는 ‘약자 혐오, 강자 숭배’다. 강자의 극악무도한 짓은 이해하고 합리화하는 반면 아무 죄 없는 약자에겐 '빨갱이' 'XX충' 등으로 딱지를 붙이며 막말을 하고 짓밟아도 된다고 여긴다. 시쳇말로는 ‘강약약강’이라고도 한다. 기저에는 자신은 약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실생활에서도 이런 일은 자주 목격된다. 어려웠던 환경을 극복하고 건물주가 되어 여유 있는 노년을 보내는 한 노인은 “이 나이 되도록 계속 어렵게 사는 건 젊었을 때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동년배 노인의 가난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젊은 시절 게으름에 대한 징벌일 따름이다.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시험에 합격했으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안 된다고 반대하는 정규직, ‘미투’ 가해자를 욕하는 대신 폭로자에게 “왜 당시에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 회사 군대 교회 등 몸담은 조직 안에서 부당한 일을 폭로한 사람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것이지”라며 손가락질하는 동료, 정부가 사회적 약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기사에 “세금이 아깝다”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 모두 갑질에 저항하는 을에게 더 분노를 느낀다는 점에서 사고 회로가 비슷하다. 스스로를 ‘강자’와 동일시하도록 하는 그 알량한 기득권이 그 자신의 힘만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왜 모를까.
이들에게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킨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의 도쿄대 입학식 축사를 들려주고 싶다. “여러분들은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을 겁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여러분이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여러분의 환경 덕택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이 세상에는 노력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사람, 너무 노력해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축복받은 환경과 축복받은 능력을,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써 주십시오. 강한 척하지 말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서로 기대며 살아가 주세요.”
최진주 정책사회부 차장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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