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는 치료할 수 없다. 광고에 흔들리지 마라.”
중국이 근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의학적 발견이나 신약 개발에 나선 것은 아니다. 소비자를 현혹하며 날로 기승을 부리는 과장 광고를 전면 금지한 것이다.
‘치료’, ‘회복’, ‘재활’. 중국의 한의원, 건강식품매장, 홈쇼핑 등에 버젓이 나붙은 문구들이다. 근시를 눈병으로 잘못 알고, 약을 먹으면 낫는 줄로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근시가 호전된다는 말만 믿고 따라 했다가 성장기 발육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지난달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교육부 등 6개 부처가 합동 공고를 통해 “근시는 예방하거나 생활 패턴을 바꿔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이라며 “근시교정에 관한 감독을 강화하고 국민을 속이는 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의료수준으로는 근시를 완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면허가 없는 안과나 기관의 의료행위는 물론, 관련 제품에 대한 검열도 대폭 강화된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칼을 뺀 것은 중국인, 특히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의 근시가 워낙 심각해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 45.7%, 중학생 74.4%, 고등학생 83.3%가 근시 증상을 보였다. 전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근시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중국 청소년 근시비율은 부동의 세계 1위다.
무엇보다 초등생의 근시 비율이 최근 10년간 두 배로 뛰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근시가 늘어나 대학 캠퍼스에는 사방이 안경 쓴 학생들 천지다. 이처럼 근시가 확산되다 보니 중국 14억명 인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억 명이 근시로 집계될 정도다. ‘근시 왕국’으로 불릴 만도 하다. 코트라는 2022년 중국의 콘택트렌즈 판매규모를 64억위안(약 1조1,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8개 정부부처 합동으로 지난해 8월 ‘청소년 근시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23년까지 청소년 근시 비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낮추기로 목표를 잡았다. 근시의 원흉인 인터넷 게임 총량과 신규 출시 게임 수량을 제한하고 청소년의 게임 사용 시간도 통제하는 메가톤급 처방이다. 심지어 초중고생의 학교 숙제량도 줄였다.
그런데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다 보니 혹세무민하는 근시 치료 광고가 활개를 치는 실정이다. 중국의 교육열이 만만치 않아 입시경쟁에 치인 아이들의 시력에 늘 과부하가 걸리는 상태다. 호주에서는 17세 청소년의 야외활동 시간을 늘렸더니 근시 비율이 30% 가량 줄었다고 하는데, 중국 어른들은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할 수 있을까.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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