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내 안에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영화 ‘인턴’에서 아내와 사별하고 지루하게 생활하던 70세 노인 벤(로버트 드니로)이 인턴십에 지원한 이유다. 한국 노인에게도 은퇴란 없다. 심지어 음악이 사라져도 멈추지 못한다. 기업 정년은 60세라도 40~50대에 밀려나는 경우가 흔하고 노후 안전판이 취약하니 70세 넘도록 일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 나이는 72.9세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런데도 노인 절반이 빈곤층이다.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년제도를 없애자는 보고서를 내놨다. 날로 심각해지는 고령화 탓에 30년 뒤 경제성장률이 1.0% 이하로 추락하고 인구의 36%에 불과한 취업자가 전체 생산을 떠맡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행도 고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 노인들도 86%가 노인 기준 70세 이상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정년을 없애고 노인 기준을 높이면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나고 고령인구는 줄어든다. 20년 간 연금재정을 126조원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 정년 연장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과 영국은 나이에 따른 고용 차별을 금지하자는 여론에 따라 정년제도를 없앴다. 일본은 6년 전 정년을 65세로 늘린 데 이어 70세로 더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은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최근 육체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최종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높였다. 노인 기준을 높이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해 초 노인 기준을 단계적으로 70세까지 올리는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 정년을 늘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임금 체계는 근속연수가 늘어나면 급여가 올라간다. 정년을 늘리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고령 근로자가 더 많아진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고용 축소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 정년이 60세로 늘어난 이후 신규 고용이 위축됐다(한국노동연구원). 근로 능력이 있는데도 나이 기준으로 은퇴시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그럼에도 임금 조정 없는 정년 연장은 자식 일자리를 빼앗는 염치없는 짓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과와 역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제도를 고민할 때가 됐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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