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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로 악당? ‘천의 얼굴’ 배우 이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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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로 악당? ‘천의 얼굴’ 배우 이학주

입력
2019.04.19 04:40
수정
2019.08.01 16:04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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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왓칭’서 첫 주연 맡아

배우 이학주는 ‘왓칭’으로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여러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로 연기력을 다진 그는 ‘독립영화계의 설경구’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배우 이학주는 ‘왓칭’으로 상업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여러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로 연기력을 다진 그는 ‘독립영화계의 설경구’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고영권 기자

그의 말간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자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서늘해진다. 미세하게 일그러진 눈빛은 스크린에 불길한 기운을 드리운다. 아주 작은 변주로 커다란 진폭을 빚어내는 연기다. 17일 개봉한 영화 ‘왓칭’에서 배우 이학주(30)를 눈여겨보게 되는 이유다.

“제 이름이 앞자리에 실린 영화가 세상에 나오다니 마냥 신기하기만 해요. 저에겐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어느 때보다 큰 책임감도 느껴요.”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마주한 이학주는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공포와 서스펜스를 주무르던 그 표정은 어디 가고 해사하고 순박한 웃음만이 동동 떠다녔다. ‘천의 얼굴’이라는 말이 꼭 어울렸다.

‘왓칭’은 평범한 직장인 영우(강예원)가 늦은 밤 회사 지하 주차장에 납치, 감금되면서 시작된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영우의 눈앞에 회사 경비원 준호(이학주)가 나타난다. 평소 영우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던 준호는 사랑을 고백하며 광기와 집착을 드러내고, 영우는 두려움에 떨면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준호의 무기는 바로 감시다. 폐쇄회로(CC)TV로 영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통제하고 억압한다. 그로 인해 일상적 공간인 지하 주차장은 출구 없는 밀실로 돌변한다. 이학주는 위협하지 않으면서 위협적인 악역을 새롭게 창조했다.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운 캐릭터예요. 준호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제대로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모르죠. 영우에 대한 애정 표현도, 그게 추행이고 폭력이라는 인식을 못해요. 준호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입장에선 선의였을 거예요. ‘난 멜로를 찍으려는데 자꾸 호러를 찍자고 하네’라는 대사도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이학주는 담백한 얼굴로 광기 어린 악역을 그려낸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이학주는 담백한 얼굴로 광기 어린 악역을 그려낸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준호는 영우가 자신을 끝내 거부하자 살인과 자해를 하며 폭주한다. 잔혹한 장면들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학주의 빼어난 연기가 관객의 상상을 자극한다. 이학주는 연쇄 살인마를 취재한 프로파일러들의 책을 찾아 읽고, 감독과 끊임없는 대화로 연기 방향을 잡아 갔다. 그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 근육이 생기듯, 연기도 평소 꾸준히 연구하고 연습해야 근력이 붙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중반부를 지나면서 현실 공포에 맞닥뜨린다. 범죄를 유희로 즐기는 온라인 세계의 관음증이 최근의 사회 이슈와도 맞물린다. 누가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학주도 영화를 찍은 이후 일상적 공간이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집에 부모님이 계시거나 중요한 촬영을 앞두고 있으면 종종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연기 연습을 하곤 해요. 예전엔 지나가던 주민들이 쳐다보면 ‘나를 왜 볼까’ 의아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차에 앉아 있는 내가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하.”

남자 배우라면 한 번쯤 탐낸다는 악역이지만 이학주는 “악역이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살인 장면은 특히 어려웠어요. 상상하는 것조차 힘드니까요. 촬영을 마치고는 두려움에 가슴이 뛰어 진정이 안 되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배우는 참 이상한 사람들 같아요.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하잖아요.”

이학주는 “서른 살이 되니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이학주는 “서른 살이 되니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이학주가 그 “이상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한양대 재학 시절이다. 사실 그는 연출 전공이다.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자신이 연출에 관심도, 재능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우연히 연기 수업을 듣고는 흥미를 느껴 친구들이 꾸린 연극에 자청해서 참여했다. 단역인데도 연기를 너무 못해서 된통 욕을 먹었다. ‘괜한 도전을 했나’ 후회도 잠시.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군 복무 중에도 2년 내내 연기만 생각했다. 대학 졸업 이후에는 여러 독립ㆍ단편영화에 참여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그러다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 영화가 바로 ‘열두번째 보조사제’다. 2015년 개봉한 ‘검은 사제들’의 원작이다. 강동원이 연기한 캐릭터가 단편영화에선 이학주였다. “영화에서 머리를 삭발해야 했어요. 장재현 감독님이 손수 삭발해 주면서 ‘앞으로 잘 될 거야’ 위로해 주셨죠.”

장 감독의 말이 예언이었던 걸까. ‘열두번째 보조사제’로 그는 2014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이후 지금의 소속사 SM C&C를 만났고, tvN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2015)으로 안방극장에도 데뷔했다. OCN ’38 사기동대’(2016)와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019), 영화 ‘날 보러 와요’(2016) ‘협상’(2018) ‘뺑반’(2019) 등 여러 작품에 크고 작은 역할로 나왔다. 7월 방영되는 KBS 드라마 ‘저스티스’에서는 대선배 손현주와 호흡을 맞춘다.

튼실한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학주의 꿈은 소박하다. “일희일비 하지 않으면서 평정심을 갖고 연기하고 싶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내 길을 가다가 스스로 만족스러운 연기도 한 번쯤 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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