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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정신병력 공유’ 법ㆍ제도 미비가 진주 참극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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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정신병력 공유’ 법ㆍ제도 미비가 진주 참극 불렀다

입력
2019.04.18 18:12
수정
2019.04.19 0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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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안씨 지난달 손괴 혐의 檢 송치 때 조현병 몰라

유족들 “임대아파트 아닌 부자 동네였으면 화 면했을 것”

[저작권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진주 아파트 방화ㆍ살해 등의 혐의를 받는 안모씨가 18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경찰은 이날 피의자 안인득(42)의 신원을 공개키로 했다. 진주=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2019-04-18(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진주 아파트 방화ㆍ살해 등의 혐의를 받는 안모씨가 18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진주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경찰은 이날 피의자 안인득(42)의 신원을 공개키로 했다. 진주=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2019-04-18(한국일보)

경남 진주 조현병 환자의 방화살인사건은 범행을 저지르는 인물의 조현병 경력을 사전에 인지하고 대처하기 어려운 현행 제도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련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범죄를 막기 어려울 것으로 입을 모으고 있다.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 조현병 환자 안인득(42)이 방화살인 사건을 저지르기 이전에 정신병력을 의심할 만한 수차례의 시도가 있었다. 불과 지난 달 안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때도 경찰은 조현병 환자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현재 경찰의 사건 발생 처리 시스템으로는 정신병력 사항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8일 오후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진행된 수사 관련 브리핑에서 정천운 진주경찰서 형사과장도 “경찰 자체적으로 정신병력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면서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경우 해당 사건에 집중한 수사나 조사를 진행한다.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에 대한 정신병력에 대한 조회는 특별한 경우에만 실시한다. 모든 피의자에 대해 정신병력이 있는지 체크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나 매뉴얼도 없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가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질렀는데 범행 동기가 터무니 없이 불분명하거나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경우 등에 한해 정신병력에 대한 조회와 의료기록 등을 받는다”고 말했다. 외관상 정상이 아니라고 인지한 경우 등에도 정신병력 관련 조사를 한다.

범행 동기 등이 분명한 사건에서는 피의자의 정신병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사건에서 조현병 환자인 안에 대한 신고가 수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미한 시비나 단순 폭행 수준이었기 때문에 경찰이 안의 정신병력을 별도로 조사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다.

다만 안의 경우 폭행 사건을 일으키거나 반복적인 주민들의 신고가 있었던 만큼 경찰이 안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지난달에만 안과 관련된 폭행, 시비 사건만 5건이 잇따라 발생했는데도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날 합동분향소를 찾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한 유가족은 “만약에 우리가 (임대아파트)가 아니었고 부자 동네였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겠냐”고 울먹이기도 했다.

의료 기록 등 정신병력 관련 자료를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아 해당 병원에 자료를 요청하는 등 절차도 간단치 않다. 한 경찰관은 “의료법에서 의사가 환자의 진료 정보를 유출하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인권적 차원에서라도 피의자의 진료정보를 수사 차원에서 함부로 조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관련 법이 있지만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했을 때 경찰이 환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서 강제입원을 시키는 것은 현행 법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이 피의자의 정신병력을 인지하는 경우는 대부분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환자 동의 없이도 관련 정보가 지자체 정신관리센터장으로 가도록 하는 ‘임세원법’이 지난 4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경찰과는 공유되지 않는다. 뒤늦게 경찰은 해당 정보의 공유를 요청했고 보건복지부는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정신질환 의심환자를 확보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환자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시내 병원으로 데려갔을 때 의료기관 측이 병실이 없다거나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의가 있어도 응급입원 등이 잘 이뤄지지 않는데다 환자나 보호자가 나중에 강제입원 문제 제기하면 법적 갈등도 발생한다.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도 걸림돌이다.

결국 경찰이 환자를 데리고 뺑뺑이를 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종민 경찰청 생활질서 과장은 “최대 3일까지 입원할 수 있는 응급입원을 시키는데 3~5시간 정도 절차가 필요한데다 결과적으로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각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행정입원을 요청한 결과 110건 가운데 65건(59%)만 입원할 수 있었다.

백종우 경희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선진국에선 경찰이 출동할 때 정신건강응급개입팀이 같이 출동하거나, 핫라인을 통해서 경찰의 전화를 받아준다”면서 “경찰은 치안의 전문가이지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어서 현장 전문가와 네트워크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간극이 생긴다”고 말했다. 미국 LA경찰의 경우는 상담에 대한 교육도 받고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때 상처받지 않게 접근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매년 받는다.

이 같은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의료계와 수사기관 등의 협의체 운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성훈 형사정책원구원 연구위원은 “보건복지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료계와 형사 관련 기관이 연계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해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범죄자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주=권경훈 기자 wertner@hankookilbo.com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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