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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가래요” 재활난민 된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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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나가래요” 재활난민 된 장애인들

입력
2019.04.19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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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은 장애인의 날… 힘겨운 일상] 

 사고ㆍ질병 등으로 장애 생긴 경우, 집중치료 후에도 후유장애 

 장기입원 수가 삭감에 병원 수지 안 맞아 ‘환자 내쫓기’식 대응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고양시에 사는 발달장애아 강모(5)군의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2년이나 대기했던 동국대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낮 병동’(주간에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하는 병동) 순번이 드디어 돌아와 뛸듯이 기뻤다. ‘낮 병동의 기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어린 시절에 낮 병동에서 집중적인 재활 치료를 받으면 큰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우 3개월 만인 3월 1일자로 병원은 낮 병동을 폐쇄했다. 환아 부모들이 폐쇄 반대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병원 측은 도저히 수지가 안 맞아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권범선 동국대 일산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10년간 수익성이 없는 재활치료에 매진한 것도 나름의 의지를 갖고 임한 것인데 한계에 부딪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건축회사에 다니던 이모(77)씨는 60세였던 2003년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오른쪽 반신 마비에 언어장애까지 와서 보호자 없이는 한시도 생활할 수 없게 됐다.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인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고 산재전문병원인 녹색병원에 입원한 이씨는 4년 간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이 수가 삭감 등의 사유를 들어 외래 치료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지난해 9월, 병원은 이씨와 부인 강모(71)씨에게 날벼락 같은 통보를 했다. 더 이상 외래 치료도 하지 않을 테니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강씨는 1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편 같은 산재 피해자는 돈이 안 돼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며 “최근에 간신히 새 병원을 찾을 때까지 7개월을 아무데도 못 가고 집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재활치료를 못 받으면서 그나마 좀 움직일 수 있던 왼손마저 굳었다.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이씨가 병원에 가려면 강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태우고 가야 한다. 연로한 강씨에게 쉽지않은 일이지만 그나마 외래 치료라도 받으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막고 신체뿐 아니라 정서적인 면에서도 좋아지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강씨는 말했다.

 ◇재활치료, 받고 싶어도 못 받는 이유 

장애가 없는 사람에겐 ‘치료를 받고 싶은데도 못 받는 상황’ 자체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재활치료를 받는 장애인들은 원한다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고 등으로 장애가 생긴 경우 수개월~1년 안에 집중 치료를 실시하면 어느 정도 기능이 회복 되는데, 이후에 추가 치료를 해도 후유장애로 남게 된다. 정부에선 이런 경우 입원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다고 보고 장기 입원 환자의 치료수가를 삭감하도록 하고 있다.

재활병원들은 퇴원 후 사회복귀를 목표로 초기부터 환자와 보호자에게 상담과 치료를 해야 한다. 퇴원이 다가오면 이후 어떻게 치료를 받고 가정 또는 사회로 복귀할지에 대해서도 설명해줘야 한다. 하지만 병원들은 실제로는 이런 설명이나 상담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입원해 있는 동안 비급여 치료를 포함한 재활치료를 계속하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입원 수가를 삭감하면 아무런 준비도 안 된 환자를 내쫓는 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 “치료를 받기만 하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다니는‘재활 난민’이 된다.

퇴원한 환자들이 외래 치료를 받기도 쉽지 않다. 재활치료 평균 수가는 사회복귀 훈련 등을 위한 작업치료와 신체 기능 회복을 위한 물리치료가 각각 30분에 2만~3만원 정도로 비교적 저가다. 같은 시간에 이른바 ‘3분 진료’를 10번 할 수 있는 타 진료과에 비하면 크게 낮은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외래 재활치료만 받는 환자는 병원에서 입원비조차 받을 수 없는 돈 안 되는 환자로 취급 당한다. 의사가 재활치료 처방을 내릴 때 종류도 실제 환자의 필요보다 병원의 수익을 고려해 정해주는 경우가 잦다고 환자나 현장 의료진은 털어놓았다.

경기도의 한 재활병원에 근무하는 작업치료사 임모씨는 “병원에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경험이 적은 치료사만 고용하려 하고, 5년 이상 근무한 치료사는 권고사직을 유도하는 경우마저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숙련된 치료사의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회복기 재활병원’ 시범사업 실시했지만… 

수년 전부터 이 같은 재활난민 문제가 부각되면서 정부도 재활의료 전달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재활의료 체계를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발생한 직후 수술과 회복을 하기 위한 ‘급성기 병원’(대학병원 등), 집중적인 재활치료를 실시하는 ‘회복기 병원’(재활병원), 장애가 고정된 후 현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치료를 받는 ‘유지기 병원’(요양병원 등) 등의 3단계로 구분했다. 회복기 재활병원은 환자에 대한 집중 재활 치료와 상담 등을 통한 사회 복귀를 견인하겠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실제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들은 불만이 많다. 전문의가 환자를 하루 50명 이상 진료하지 못하고, 치료사도 하루에 10명 이상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엄격한 규제를 하는 반면, 수지조차 맞출 수 없는 치료 수가는 전혀 인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재활병원(70병상) 원장은 “시범사업 참여 후 바뀐 것은 입원환자들에 대한 수가 삭감이 조금 줄었다는 정도”라면서 “월 500만원 정도 덜 삭감된게 이득이라면 이득일지 모르나 서류 작업 등 늘어난 업무를 고려하면 전혀 나아진 점이 없다”고 말했다. 오창현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시범사업이 하반기에 본사업으로 전환된다”면서 “본사업에서는 치료 수가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해 현실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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