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출근 여정의 시작은 버스 정류장의 초조함이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운 좋게 바로 온다면 출근에 걸리는 시간은 40분쯤. 아니면 50분까지 늘어난다.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다섯 역을 가는 동안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내내 기사를 본다. 퇴근 길엔 회사에서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자리에 앉아 눈을 붙일 수 있다는 여유와 20분을 맞바꿨다. 이런 통근의 규칙을 세우기까지, 지각과 피로 누적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갑자기 통근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 건 데이비드 비셀 호주 멜버른대 지리학부 교수의 책 때문이다. 비셀 교수는 3년간의 현장 조사와 면접 조사 바탕으로 ‘통근하는 삶’이라는 연구서를 펴냈다. 그는 “특별한 여행이나 휴가가 아니어도, 집과 직장을 오가는 일상의 이동이 삶을 심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인류 역사를 따져 보면 통근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집과 직장의 거리가 멀어진 도시화의 결과다. 19세기엔 사람들의 하루 이동 거리가 평균 50m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도 거뜬히 오간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통근 시간이 늘어나는 건 손해다. 하지만 저자는 이동 시간이 반드시 낭비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개인 휴대 기기는 마음만 먹으면 이동 시간을 알뜰하게 쓸 수 있게 해 줬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기만 한 대중교통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통근자가 이동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통근의 경험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했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 차를 운전하는 사람,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은 통근하는 동안 각기 다른 경험을 축적한다.
통근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교통 정책과 도시 인프라도 변화시킨다. 사회적 불평등과도 연관 관계를 맺는다. 자동차 연료 가격이 올라가면 직장에서 더 멀리 떨어져 거주하는 사람, 즉 주거 비용을 넉넉하게 투자할 수 없는 사람이 더 큰 타격을 입는다. 통근 시간의 불평등은 가정 내 노동 시간 불평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저자가 통근을 “인생의 다른 영역들과 얽혀 있는, 삶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 이유다.
통근하는 삶
데이비드 비셀 지음ㆍ박광형 전희진 옮김
앨피 발행ㆍ362쪽ㆍ1만6,000원
통근을 새삼 고찰한 끝에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일까. “통근을 피할 수 없다면, 통근 시간과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조언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 속 사례들이 이질적이지 않다면, 당신은 ‘통근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책의 사례들은 익숙하지만, ‘연구서’여서인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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