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 김정현 펫츠오앤피 대표 인터뷰
“사회적 편견 맞서 기기 보급해 6년간 8000 마리에 새 삶
동물 이동권은 행복과 직결… 장애 이유로 안락사 말아야”
“한국에 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그날이 한국에서 가장 슬펐던 날이었던 거 같아요.”
지난해 5월 당시 생후 2개월이던 암컷 진도 혼종견 보리는 반려인인 미얀마 출신 메리 노암(35)씨 가족이 경기 부천시에서 운영하는 마트 앞 도로를 건너다 택시에 치였다. 일부 장기까지 파열돼 생사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뒷다리는 영영 못쓰게 된 보리. 정상 생활은 포기한 채 집에서만 눕혀 키우던 노암씨 가족은 수소문 끝에 사고 발생 3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반려동물전문 의지(의수와 의족)ㆍ보조기 업체를 찾아 보리의 휠체어 제작을 부탁했다. “다쳤다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예전처럼 돌아다닐 수만 있게 해주세요.”
◇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
지난 3일 오후 서울 양평동 ‘펫츠오앤피’ 클리닉에서 만난 보리는 휠체어를 뒷다리 삼아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만의 방문이라 정신 없이 이곳 저곳을 훑고 다니며 냄새를 맡는 통에 김정현(36) 펫츠오앤피 대표는 녀석의 상태를 살피는데 애를 먹었다. “한창 클 시기에 휠체어를 제작하다 보니 넉넉하게 만드는 대신 휠체어 높낮이와 앞뒤 간격을 조절할 수 있게 했거든요. 자란 만큼 조절했으니 더 편하게 보리가 돌아다닐 수 있을 겁니다.”
보리에게 새로운 두 다리를 선물해준 김 대표는 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로 불린다. 의료용 기구를 다루기에 해부학 등 전문 지식이 필요한 동물재활공학사는 장애로 움직임이 불편한 동물들 의지와 휠체어 등 맞춤형 보조기구를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아직 전문자격증이 없고,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직업사전(2017년)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을 만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직업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동물재활공학사는 현재 약 1만 6,000개가 등록된 직업사전에 오르기 전 단계인 ‘신직업’으로 분류돼, 향후 1~2년 안에 사전에 등재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동물재활공학사’라는 직업명 자체가 6년 전 자신이 명함에 처음 새기면서 만들어졌다면서 아직 국가자격증이 없어서 사람 의지를 만드는 ‘의지ㆍ보조기 기사’가 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의료재활과학을 석사 전공하고 국내 의지보조기 업체를 1년간 다니던 2011년 어느 날, 그는 유튜브를 통해 우연히 돌고래에게 실리콘으로 인공 꼬리를 만들어주는 영상을 봤다. 그리고 그때 ‘왜 지금껏 동물에게도 보조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다운증후군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장애에 대한 거부감은 없이 컸거든요. 게다가 어릴 적 산골마을 집에서 많은 동물들과 함께 살던 당시 새끼 고양이가 문틈에 낀 사고로 다리가 마비돼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던 슬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선지 돌고래 영상을 보는데, ‘저런 일을 국내에서 한다면 내가 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관련 자료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장애를 가진 인간과 동물에게 인공 신체를 만들어주는 과정의 상당 부분이 비슷했지만, 인간 이외 동물이 가진 신체적 특성도 이해해야 하는 만큼 정보습득에 한계를 느꼈다. 결국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반려동물 보조기구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던 미국으로 2012년 건너갔다. “동종 업계에서 일하던 아내까지 ‘먹고 살 수나 있겠냐’며 걱정이 많았어요. 주변에서도 ‘잘 다니는 직장 두고 왜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관련 업체 등을 통해 정보수집과 실습을 마친 김 대표는 2013년 귀국해 국내 최초 반려동물전문 의지보조기 클리닉인 ‘펫츠오앤피’를 개업했다. 다리 마비나 절단과 같이 신체적으로 중증 장애를 가졌거나, 중증 장애는 아니더라도 몸을 움직이는데 불편해 보조기가 필요한 동물들과 그 반려인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한 세상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홍보가 안 된 탓도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굳이 동물한테까지 의족이나 휠체어 같이 비싼 의료기기가 필요하냐는 인식들이 강했다. 사람과 같이 동물에게도 의지보조기 효능이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국내 수의학계 입장 역시 그가 넘어야 할 산이었다. “개업 후 9개월 동안 업장에서 숙식까지 대부분 해결하며 홍보도 하고, 수의학계에 관련 정보를 알리기 위해 많이 뛰었습니다. 지금 보면 그때가 값진 시간이었죠. 남은 시간에는 보조기 만드는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이때 슬슬 입소문도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새로운 삶을 선물한 동물은 약 8,000여 마리에 이른다. 한 달에 평균 60~70마리 정도로, 대부분 개와 고양이지만 닭과 염소, 고슴도치 등 다른 동물들도 많다. 아파트가 많은 국내 주거형태 특성상 슬개골탈구 보조기와 무릎 보조기 제작 비율이 높다. 김 대표는 “아무리 처방과 진단에 맞게 보조기를 잘 만들어도 피부에 쓸리면 동물들이 착용하겠느냐”며 “맞춤형 제품인데 고객인 동물들과 말이 안 통하는 만큼 반려인과의 상담에 특별히 신경 쓴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치료로 개업 초창기에 만난 골든리트리버 품종 ‘동순이’를 꼽았다. 동순이는 갓 태어나 홍역 치료를 받다 너무 많은 주삿바늘에 찔려서인지 뒷다리가 마비됐고 반려인에게 버림받았다. 자원봉사자들과 치료비를 모금하고 보조기와 휠체어를 마련해주며 가슴이 벅찼다. “동순이는 당시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입양해 잘 크고 있고요. 저도 이때 자원봉사자들과 연을 맺어 다른 몰티즈 품종 유기견을 입양해 6년째 잘 키우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 반려인구 1,000만 시대가 되면서 반려동물용 의지ㆍ보조기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재활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우리 사회에서 공감을 얻는 것 같아 고무적이라는 김 대표. 하지만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조금 불편할 뿐인데, 장애를 가진 반려동물과 산책이라도 나간다 치면 ‘아픈 애를 집에다 두지 왜 데리고 나왔냐’는 시선에 위축된다는 반려인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사람은 물론 동물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다.
“장애로 움직이지 못하면 신체ㆍ정신적으로 아주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는 만큼 이동권은 행복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의료 보조기구가 사람들 전유물이던 국내에서 장애를 가진 반려동물은 안락사 혹은 유기되거나 그냥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애 반려동물들도 보조기를 통해 다시 걷고, 달리고, 헤엄치며 행복함을 느끼고, 이를 바라보는 반려인들 마음도 흡족해지면 좋겠습니다. 이게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한 세상 아닐까요.”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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