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디펜딩 챔피언’ SK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번 시즌 개막 후 20경기 넘도록 침체된 팀 타선이 좀처럼 깨어날 줄 모른다. 팀 타율은 17일 현재 0.229로 10개 팀 중 최하위다. 반발력을 낮춘 새 공인구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구단 내부에선 지금까지 반등을 이뤄내지 못한 건 일시적인 슬럼프가 아니라 ‘이게 진짜 실력’이라는 냉정한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뼈 아픈 건 상대 5선발급 투수와 맞붙는 경기를 자꾸 놓친다는 점이다. 17일 잠실 두산전에서 SK는 2선발 앙헬 산체스를 내세우고도 3-12로 완패했다. 두산 선발 투수가 허벅지 부상으로 빠진 이용찬의 공백을 메울 ‘임시 선발’ 홍상삼인데도 제대로 공략을 못했다.
최근 5년간 2승 밖에 없고, 고질적인 제구 문제를 안고 있는 홍상삼은 이날 한 경기 최다 폭투 신기록(5개)까지 세울 정도로 컨트롤이 흔들렸지만 4회까지 1점으로 막았다. 5회에 폭투 3개를 범하며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SK는 홍상삼에게 714일 만의 선발승을 안길 뻔 했다.
그 동안 SK는 홍상삼 사례뿐만 아니라 위기에 빠진 상대 투수들을 여럿 살렸다. 지난 14일 KIA전에선 대체 선발로 시즌 첫 등판한 KIA 홍건희에게 6이닝 1실점으로 묶여 977일 만의 선발승을 선물했다. 또 7일엔 올해 37세로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들었던 삼성 윤성환에게 6이닝 동안 1점 밖에 뽑지 못해 214일 만의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헌납했다.
롯데 4, 5선발 투수의 ‘반전투’를 이끌어낸 것도 SK다. 올해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한 롯데의 4선발 장시환은 지난달 27일 삼성전 첫 등판에서 2.2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지만 두 번째 등판인 이달 2일 SK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쳐 1,022일 만에 감격적인 선발승을 따냈다.
이튿날엔 한 경기에 선발 투수 2명을 투입하는 양상문 롯데 감독의 ‘1+1 전략’에 따라 출격한 첫 번째 박시영이 5.2이닝을 무실점으로 SK 타선을 묶었다. 또 LG의 5선발 배재준이 데뷔 후 두 번째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상대 역시 3월27일 SK전(6이닝 1실점)이었다.
상대 선발 투수의 기를 살려준 SK 타선은 정작 힘을 실어줘야 할 동료 선발 투수들에게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3~5선발 브룩 다익손과 박종훈, 문승원은 등판 때마다 제 몫을 다했지만 17일까지 모두 승리 사냥에 실패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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