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전 세계 바다 1평방 마일당 떠 있는 플라스틱 조각의 추정치가 5만개에 이른다’는 수치에 놀라지 않는, 무뎌진 현대인의 감각을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은 예술로 깨어나게 한다. 그는 5만개의 버려진 라이터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재현한다. ‘공룡의 귀환’은 수많은 비닐 조각으로 티라노사우루스를 형상화한다. 이 작품에 무려 24만개의 비닐 이미지가 사용됐는데 그것은 전 세계에서 10초마다 사용되는 비닐 봉투의 추정 수치다. 현대인은 공룡이 남긴 석유를 이용해 비닐을 만들고 그 비닐로 다시 공룡 같은 현실을 만들고 있다.
그 유명한 알바트로스 사진들도 전시되고 있다. 배 속에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 차 죽은 새. 내가 한국에서 버린 일회용 포크의 종착지가 수천㎞ 떨어진 태평양 한복판, 미드웨이 섬 어린 알바트로스의 배 속이라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관객들은 폐부가 플라스틱 조각에 찔리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된다. 조던의 사진은 편치 않지만 고발에 그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와 같은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그의 사진 속 알바트로스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현실에 대한 분노나 개탄을 넘어 참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죽은 알바트로스를 촬영할 때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뿐 아니라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가 상영된다. 영화는 이들의 비극에 앞서,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새인지를 보여준다. 짝꿍 알바트로스가 서로의 동작을 똑같이 흉내 내며 구애의 춤을 추는 장면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동작을 맞춘 새는 60년이 넘도록 평생의 짝이 된다. 알을 낳은 엄마는 태평양으로 먹이를 구하러 가고, 아빠 알바트로스는 배고픔과 갈증, 비바람을 견디며 알을 품는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1만6,000㎞ 이상을 날아간다. 알바트로스는 플라스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바다가 제공하는 것들을 믿고 먹을 뿐이다. 아기 새들은 엄마가 주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받아먹고 죽어간다. 살아남은 청소년 알바트로스는 육지에 발을 딛지 않고 3~5년을 태평양 바다에서 살아간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이 죽어가는 이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바트로스는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조던은 환생하면 알바트로스로 태어나 플라스틱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고통을 지켜보는 목격자인 조던은 숨진 새의 깃털에 얼굴을 파묻고 통곡한다. 그리고 새의 주검에 꽃을 헌화한다. 영화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애도’다. 나는 지금껏 애도가 깊은 슬픔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작가 조던은 이렇게 말한다. “애도는 슬픔이나 절망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과 같다. 애도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혹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 몇 마리를 구조하는 것보다, 빨리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보다, 인류가 초래한 종말적 현실을 직시하고 깊이 애도하는 것, 그렇게 의식의 깊은 우물 저 아래 방치돼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조던은 말한다.
4월은 애도의 계절. 미세플라스틱, 미세먼지,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 ‘지구의 날’을 맞이한다. 이 행성에서 사라져간,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생명들을 애도한다. 애도는 절망이 아닌 사랑이며, 사랑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 그 어떤 어둠에도 굴하지 않는 행동임을 알기에.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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