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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노 ○○ 존’은 없다

입력
2019.04.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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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일지도 모르는 아이와 보호자를 미리 추방하는 세계, 이 규율이 지워내고 싶은 '낯선 타자'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아기와 엄마를 가로막는 ‘노키즈’ 문구가 관용 없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류효진 기자
'민폐'일지도 모르는 아이와 보호자를 미리 추방하는 세계, 이 규율이 지워내고 싶은 '낯선 타자'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아기와 엄마를 가로막는 ‘노키즈’ 문구가 관용 없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류효진 기자

이런 일들은 지금 있을 수가 없다. 가령, 봄철 경춘선은 말 그대로 봄나들이를 떠난 행락객으로 붐비는데, 무료 탑승이 가능한 65세 이상 노년층이 승객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중 일부 어르신은 전철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미리부터 나눠 마시며 소란을 피워 같은 칸 승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 시니어 존’ 같은 게 생겨야 한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 KTX에서는 급한 출장을 떠나는 듯한 직장인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중 일부는 기차를 타는 내내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이어폰으로 내릴 때까지 급한 업무 전화를 작지 않은 목소리로 쩔쩔매며 받아낸다. 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주위를 시끄럽게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노 비즈니스맨 존’ 같은 게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밤늦은 시간 KTX에는 반대로 여행객이 많은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한 캔 두 캔 아니 여러 캔 맥주를 함께하며, 다 마신 맥주캔을 우그러뜨리면서 크나큰 목소리로 남은 흥취를 즐기다, 승무원의 조심스러운 지적에 5분 정도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금세 다시 떠들어대는 무리가 하나씩 꼭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 트래블러 존’ 같은 것을 만들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홍대입구역이나 강남역을 주말 늦은 시간에 지나가는 순환선에는 그곳이 공공장소인 것을 잊은 듯 서로의 애정을 스킨십으로 확인하려는 커플이 종종 있기 마련이라 그 주변에서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헛기침만 하거나 눈을 흘기거나 하는 승객들의 말 못 할 불편과 고통이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 러버 존’ 같은 것을 만들어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카페에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시험공부를 도서관인 양 자리 맡아 하는 대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카페가 ‘노 스튜던트 존’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백화점 고객센터에서 갑질을 일삼는 여성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곳을 ‘노 우먼 존’으로 만들 수는 없다. 운전에 서툰 초보 여성 운전자가 (과연 정말로?) 있다고 하더라도 고속도로를 ‘노 레이디 존’ 삼을 수는 없다.

버스 기사를 폭행한 20대 남성이 있었다고 하여,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폭언한 30대 남성이 또 있었다고 하여, 해수욕장에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도둑 촬영하는 40대 남성이 있었다고 하여, 운송업체와 편의점업계와 해수욕장 운영조합의 뜻에 따라 ‘노 맨 존’을 만들고 이를 홍보할 리가 없다.

그런 행동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고? 추상적이고 편의적인 분류에 따라 사람을 배제하고 축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따금 일어나고 있다.

가령, 시끄럽게 울어대는 영ㆍ유아가 조용히 식사를 즐겨야 할 나의 권리를 침해하므로 ‘노 키즈 존’에 찬성한다는 ‘일부’ 어른. 내 가게는 요즘 힙한 디저트 가게인데 어린아이라니, 어울리지 않으므로 ‘노 키즈 존’을 만든 ‘일부’ 자영업자. 식당 테이블에서 똥 기저귀를 갈았다는 도시 괴담을 어디선가 (본 적은 없지만) 들은 것 같기도 하니 ‘노 키즈 존’이 있어 마땅하다는 ‘일부’ 청년.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니, 아이들을 멋대로 내버려 둔 엄마가 문제이기에 ‘노 키즈 존’은 문제가 없다는 또 다른 ‘일부’ 어른.

이들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까? 다른 건 괜찮은데 애들만 안 된다고 하시니 그에 따라 추상적이고 편의적으로 말하자면 ‘아동 혐오주의자’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 어딘가에 ‘노 헤이터 존’을 만들어 그들을 배제하고 축출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그럴 권리가 있는 사람이 없듯이, 그런 일을 당해도 되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범위에 영ㆍ유아와 어린이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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