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정당한 사유 없이 3개월 넘겨”… 녹지병원 허가 넉달 만에 취소 결정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됐던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결국 좌초됐다. 제주도는 의료법이 정한 개원 시한 내에 문을 열지 못한 녹지병원의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하지만 녹지병원이 개설 허가 취소에 불복해 소송전에 나설 경우 법원의 결정에 따라 녹지병원의 운명이 뒤바뀔 가능성은 남아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7일 오전 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녹지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의 청문조서와 청문주재자 의견서를 검토한 결과 녹지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녹지병원은 지난해 12월 조건부 개설 허가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의료법에서 정한 3개월의 기한을 넘기고도 개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원을 위한 실질적 노력도 없었다”며 취소 결정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도는 앞서 녹지병원이 현행 의료법이 정한 개원 기한인 지난 3월 4일까지 개원하지 않자, 같은 달 26일부터 개설허가 취소 전 청문 절차를 진행했다. 이어 청문주재자는 지난 12일 청문 진행 결과에 따른 최종 의견서를 도에 제출했다. 청문주재자는 의견서를 통해 15개월의 허가 지연과 조건부 허가 불복 소송 제기 등의 사유가 3개월 내 개원 준비를 하지 못할 만큼의 중대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내국인 진료가 사업계획상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음에도, 녹지병원 측은 이를 이유로 병원을 개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청문주재자는 또 녹지병원 측이 의료인(전문의) 이탈 사유에 대해 충분한 소명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의료진 이탈 후 신규채용 공고 및 계획 등 의료진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증빙할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원 지사는 이날 또 “지난해 12월 조건부 허가 직후 도는 개원에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협의해 나가자는 의사를 전했음에도 녹지병원 측은 협의 요청을 모두 거부해 왔다”면서 “지금 와서야 시간이 필요하다며 개원 시한 연장을 요청하는 것은 앞뒤 모순된 행위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는 2017년 8월 서귀포시 동흥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에 778억원을 들여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도에 개원 허가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개설 허가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자 도는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개설허가 여부를 묻는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공론조사 결과 ‘불허’ 결정이 이뤄졌지만 도는 불허시 대내외적인 파장을 우려해 공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부로 국내 첫 영리병원의 허가를 내줬다. 결국 도는 녹지병원에 개설 허가를 내준 지 4개여월만에 또다시 개설 허가 취소라는 정반대의 처분을 내리게 된 셈이다.
이번 녹지병원 개설허가 취소 결정으로 인해 향후 소송전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우선 녹지병원 사업자인 녹지제주는 이번 도의 개설허가 취소 처분에 대해 불복해 허가 취소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녹지제주는 이미 지난 2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도의 조건부 개원 허가를 취소하라며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녹지제주는 또 병원 개원이 최종적으로 무산될 경우 병원 개원에 따른 투자금 800억원 가량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할 수 있는 등 앞으로 치열한 소송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도 역시 녹지제주의 소송과 관련해 도 소속 변호사와 외부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소송전담반을 구성해 운영 중이다. 도는 이번 개설 허가 취소인 경우 의료법을 위반한 사항이기 때문에 향후 소송에서도 유리한 입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원 지사는 “이번 허가 취소에 따른 녹지제주의 소송 등 법률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할 것”이라며 “또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사업자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투자자인 녹지그룹, 승인권자인 보건복지부와 제주도 4자간 협의를 진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영리병원 반대단체들도 녹지병원 개설 취소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제주영리병원 철회와 원희룡 퇴진 제주도민운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총체적 부실 속에서 허가를 내줬던 녹지병원 개설 허가 취소는 상식적으로 당연한 결정”이라며 “다시는 영리병원을 재추진할 수 없도록 정부가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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