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서 대량살상무기 제거 공감 등 악재로”
우리 정부가 4ㆍ11 한미 정상회담 전 북측에 대북특사 파견 등 고위급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북측이 회신하지 않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한 것도 북측이 물밑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정부 사정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이날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에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싶다는 의향을 북측에 전했으나 북측이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특사뿐 아니라 남북 물밑 접촉이 전반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결국 대통령의 공개 제안으로 대화 요구 수위를 높인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북이 마주 앉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전 수순인 대북특사 파견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만 밝혀 배경이 뭔지 추측이 분분했는데, 실제 북측이 대화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정황이다.
북한이 쉽게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외교가에 파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에 ‘당사자’ 역할을 주문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다. 우리 정부가 북측의 부분적 비핵화 방안이나 제재 완화 요구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북한이 압박을 이어가리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전날 블로그를 통해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로) 북한 일반 주민들도 현 흐름을 다 알게 돼 남한이나 미국 입장이 북한 요구에 맞게 변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김 위원장도 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게 됐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남북 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 목표에 대해 완벽하게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포함한 비핵화 개념에 공감을 표시한 것도 악재로 꼽힌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지역학)는 “남측이 포괄적 비핵화 합의를 설득하려 할 게 뻔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재 완화 방안 등 북한이 구미가 당길 만한 카드가 마땅찮은 상황에 북한의 기대감을 더 줄여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직접 회담을 제의한 만큼 김 위원장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수 있다는 낙관적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 시한을 비교적 넓게 잡아 연말로 밝힌 것은 타협 의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라며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는 미측 언급이 사실일 경우 북측도 조만간 결단을 내려 남북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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