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죄 프레임 넘어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받고 있는 뇌물과 성폭력, 직권남용 등 3가지 혐의 모두 적잖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 가운데 성폭력 수사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공소시효의 벽 외에도 김 전 차관 등이 주장하는 ‘무고죄 프레임’도 넘어야 한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대부분 채권ㆍ채무관계로 얽혀 있어 고소의 동기나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 전 차관은 이런 방어논리로 피해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해 놓은 상태다.
16일 검찰 등에 따르면 2013년 검찰과 경찰 수사에서 김 전 차관이나 윤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 4명 가운데 3명은 모두 윤씨와 돈 관계로 얽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모씨의 경우 윤씨에게 24억원을 떼인 뒤 상환을 요구하다 윤씨 부인에게 간통죄로 고소당했다. 최모씨 역시 윤씨에게 빌려준 5,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자 사이가 틀어졌다. 다른 피해 여성 이모씨는 윤씨가 마련해 준 명품샵 보증금 1억원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건넨 혐의(횡령)로 윤씨에게 고소를 당했다.
2013ㆍ2014년 두 차례 수사에서는 이런 금전 관계가 피해 여성들의 성폭력 주장을 약화시키는 근거로 작용했다. 실제 당시 권씨는 윤씨를 사기ㆍ강간 혐의로 고소했지만 형사처벌이 여의치 않자 윤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만한 최씨와 이씨를 접촉했다고 검찰은 결론을 내렸다. 권씨가 최씨에게 “윤중천을 구속시키려면 피해자 두세 명이 더 필요하다. 윤씨가 가져간 벤츠를 돌려받으면 2,000만원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제안하는 통화 녹음도 당시 수사기관은 확보했다.
김 전 차관이 이달 8일 피해 여성들을 서울중앙지검에 무고죄로 고소하며 역공에 나선 것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 전략으로 보인다. 여성들이 윤씨와 돈 관계로 얽혀 있다 앙금이 생기자 보복 차원에서 자신과 윤씨를 성폭행범으로 몰고 있다는 논리다. 이른바 무고죄 프레임인데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 삼는 근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내연 관계이거나 금전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성폭행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부부강간도 엄연한 범죄인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 최근 수사단에 자진 출석한 이씨가 담당 검사와의 면담에서 자신이 강압적 성폭행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되고 있다. 자신이 이른바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씨는 2006년 9월 윤씨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한 뒤 윤씨의 성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됐고, 윤씨의 협박과 강요로 여러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해 왔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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