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한도 승인 때 실제 금액 따져
국민연금이 수십, 수백억의 보수를 챙기는 재벌 총수 등의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종전에도 사내이사나 감사에게 줄 수 있는 ‘보수한도’를 회사의 규모나 경영성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을 때 주주총회에서 이를 반대한다는 원칙은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실제 보수로 얼마를 지급했는지도 따져 보고 반대 의결권 행사 시 실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반대 후에도 개선이 없을 경우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압박해 나가기로 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이 같은 내용의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한도를 승인할 때, 기업의 규모와 경영성과 뿐 아니라 실제 이사들이 받고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를 들여다보고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골자다.
상법에 따라 주식회사는 정관이나 주총 의결로 이사의 보수한도를 정하고, 그 수준이 과할 경우엔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기업의 이사 보수한도는 실제 주어지는 급여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정해 놓는 경우가 많아 찬반이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김경율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은 “이사가 받는 금액은 20억 내외인데 보수한도는 100억으로 크게 잡아놓은 사례가 많다”면서 “이 경우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이 주총 안건으로 올라와봤자 실제 보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또 반대한 후에도 이에 대한 개선이 없으면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해 비공개 대화나 공개서한 발송 등으로 입장표명을 요청하고 현황파악을 위한 자료 및 개선책 요구 등 압박해 나가기로 했다. 경영진의 지나치게 높은 연봉이 일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재벌 총수 일가 출신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의 보수 격차는 2014년 24배에서 2017년 35배로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선 이른바 '살찐 고양이법'을 만들어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 사이의 급여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6년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와 10배로 제한하는 내용의 ‘최고임금법’(일명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했다.
다만 국민연금의 지침 개정이 경영자의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자의 역할은 당장 성과를 내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산업시장을 개척하는 등 장기적인 측면도 있는데 국민연금의 개입이 공격적인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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