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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의 균형] 보이지 않는 벽

입력
2019.04.1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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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충돌 인식개선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한 물총새의 충돌 장면.
유리창 충돌 인식개선 캠페인 일환으로 제작한 물총새의 충돌 장면.

4월이 되었건만 봄추위 덕에 군산집 벚꽃은 그 꽃망울을 느리게 틔우고, 조금 일찍 심은 완두콩도 자라질 못합니다. 그래도 봄이기에 겨울새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제비가 날아듭니다. 벌써 소쩍새며 휘파람새 소리가 숲에서 들려옵니다. 바야흐로 번식의 계절이 다가온 것입니다. 겨울철새야 봄에 북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만, 제비나 꾀꼬리와 같은 여름철새들은 봄철 굳이 먼 거리를 날아 한반도로 날아오는 이유는 무얼까요?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환경에 적응한 것입니다. 북반구 여름철은 열대보다 낮이 길어 풍부한 먹이를 오랫동안 확보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손을 키워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동하며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고도의 스트레스, 포식 등의 위험을 감내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를 다시 찾은 새들에게 도사린 큰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투명창 충돌입니다.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으로 날아든 되지빠귀.
건물 유리창에 반사된 풍경으로 날아든 되지빠귀.

지난 한 해는 야생조류와 투명창 문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만 연간 3억5,000만 마리에서 9억9,000만 마리가, 캐나다에서는 2,500만 마리 조류가 투명창 충돌로 희생됩니다. 우리나라 현황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죠. 넓은 캐나다도 건물 수는 약 1,000만 채인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710만 채 건물 수로는 엄청난 수가 희생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2018년 전국의 56지점을 10개월가량 조사한 결과 연간 800만 마리는 희생당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는 매일 2만 마리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기 어려운 수임은 분명합니다.

익산의 한 방음벽에 찍힌 멧비둘기 충돌 흔적.
익산의 한 방음벽에 찍힌 멧비둘기 충돌 흔적.

새들은 왜 투명창에 충돌하는지 간혹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때는 저는 질문을 다시 던져보죠. 혹시 살면서 유리문에 부딪혀본 적 없는지, 혹은 안경을 쓰고 세수해본 적이 없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유리를 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유리를 볼 수 있다면 유리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없어야 맞습니다. 사람은 유리를 배워 인식하는 것이지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속도가 느린 우리야 또 기회가 있지만, 빠르게 창공을 가르는 새들에겐 다음 기회란 없습니다. 실패 후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방음벽 아래를 걷다보면, 찻길인지라 빠르게 지나치는 차에서 나는 굉음과 바람은 사람을 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그곳에 누워 백골이 된 새들의 무덤일 것입니다.

지방도 방음벽 아래 충돌로 폐사한 물까치.
지방도 방음벽 아래 충돌로 폐사한 물까치.

그러나 여전히 투명방음벽의 존재이유는 있습니다. 방음벽 안쪽에 들어가 보면 신기하게도 소음은 정말 줄어듭니다. 국토가 좁아 도로 인근까지 주거지를 만드는 한국에서 어쩌면 투명방음벽은 이제 필수요소입니다. 도로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조망권을 고려한다면 불투명 방음벽은 어려운 선택지겠지요.

다만 이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사실 많습니다. 이미 설치된 투명방음벽에는 새들이 인지할 수 있는 도트나 물방울 문양을 붙여주면 됩니다. 신규 방음벽에는 3㎜ 정도의 가로줄을 5㎝ 간격으로 인쇄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신기하게도 새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피합니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우리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무늬이기에 투명방음벽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고창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된 수없이 많은 참새들의 죽음
고창 방음벽 아래에서 발견된 수없이 많은 참새들의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간 760만 마리의 새들은 방음벽이 아닌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고 있습니다. 공공건물 비율이 채 2.7%에 지나지 않은 한국에서 사유건물에 공권력이 이러저러한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에 기대 해결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돈이 조금 더 들고, 귀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어느덧 사라져가는 생명체를 보듬으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마땅한 배려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몇 개의 블록만 빠져도 균형을 잃고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젠가와 같이, 어쩌면 우리도 우리 주변의 블록을 하나씩 빼고 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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