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인당, 총선서 39석으로 사민당 이어 2위
“기후변화 정책이 서민 힘들게 한다” 주장해 인기몰이
14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핀란드 유권자들이 좀체 양립하기 힘든 표심을 드러냈다. 중도우파 집권여당에 등을 돌렸지만 절반은 중도좌파, 나머지는 극우 성향 정당으로 쏠렸다. 복지 강화 공약을 내세운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이 최대당이 됐지만, 단 1석 차이로 제2당이 된 정당은 ‘기후변화 대책’에 무관심한 극우 포퓰리스트 성향이었다. 이념지향은 달라도 이 나라 국민들이 ‘미래를 대비해 현 세대가 고통을 감수하자’는 접근법 대신 ‘당장 편하게 살자’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핀란드 일간 일탈레흐티에 따르면 안티 린네가 이끄는 사민당은 17.7%의 득표율로 전체 200석 중 40석을 확보했다. 지난 선거에서 34석이던 사민당이 다수당이 된 건 2003년 이후 16년만이다. 유시 할라아오 대표가 이끄는 핀란드인당은 17.5%를 얻어 39석을 확보, 간발의 차로 제 2당에 올랐다.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연합당은 17%로 38석을 기록해 3위에 올랐으며, 유하 시필라 총리가 이끄는 기존 집권세력(중도당)은 31석으로 대패했다.
사민당의 승리는 중도 집권세력의 복지 축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발로 해석된다. 중도당은 노령인구 증가로 예상되는 복지예산 부족에 대비, 교육ㆍ고용 관련 지출 감축을 추진해왔다. 또 복지 업무를 기초자치단체로 이관해 정부 지출을 줄이는 내용의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시필라 총리가 지난달 사퇴했다. 반면 사민당은 세금인상과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복지강화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번 선거에서 더욱 놀라운 건 핀란드인당이다. 핀란드인당은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8.1%에 불과했다. 단 5개월 만에 지지율이 두 배 가량 상승하며 다수당 자리까지 넘본 건 핀란드 정가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핀란드인당의 약진을 기후변화 대책을 부정하는 공약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대다수 정당이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육류ㆍ항공요금에 환경세 부과 △벌목 규제 등을 주장했지만, 핀란드인당은 “보통사람들에게 해가 된다”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훔쳤다는 것이다. 현지매체 헬싱긴 사노마트의 정치 칼럼니스트 사스카 사리코스키는 “선의를 가진 이들이 이번 선거를 기후변화 토론의 장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핀란드인당 승리를 위한 멍석만 깔아줬다”고 평했다.
실제로 핀란드인당 할라아오 대표는 온라인 영상을 통해 “기후에 대한 히스테리(과잉 반응)는 핀란드의 경제와 산업을 무너뜨린다”면서 “(기후변화 정책이) 연료세, 운송비, 난방비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당 소속의 마티 푸트코넨도 TV 토론에서 “환경 규제는 노동자들의 입에서 소시지를 빼앗아 간다. 특히 사료값이 20~40% 오를 텐데, 개와 고양이를 안락사 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할 건가”라며 과격한 발언을 내놨다.
NYT는 이런 정치권의 반(反) 기후변화 기조가 이미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위한대안(AfD)’은 대기오염 방지 정책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를 부정했으며,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대는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대표주자 격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실체가 없다”며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했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아델피’의 스텔라 샬러는 “이민 문제가 더 이상 폭발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서 기후변화가 새로운 갈등의 장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연립정부 구성의 주도권을 쥐게 된 린네 사민당 대표는 총리직에 오르기 위해 다른 3, 4개 정당과 연정 협상을 벌여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영국 가디언 등은 다수 정당이 난립하고 공공서비스 비용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커 연정 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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