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9억명, 생애 첫 투표 참가자 8,300만명, 투표소 직원 1,100만명, 투표소 100만곳, 전자투표기 400만대…. 지난 11일 시작돼 무려 6주간의 대장정에 나선 인도 총선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선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눈여겨볼 만한 숫자는 또 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유권자가 투표하기 위해 집에서 ‘2㎞ 혹은 1마일(1.6㎞)’ 이상을 이동해선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맥이든, 벵골만의 섬이든, 외딴곳에 사는 국민이 먼 길을 떠나 투표권을 행사할 게 아니라, 국가가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시 말해 산간벽지라 해도 한두 명의 유권자만 있어도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 결과 집계를 위해 선거 공무원들이 직접 투표함을 수거하는 ‘고난의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13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인도 대륙 곳곳의 격오지로 향하는 선관위 직원들의 ‘장거리 여행’은 이번 총선에서도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북동부 아루나찰프라데시주(州)의 외진 마을에 사는 유권자 한 명을 위해 공무원들은 하루 종일 하이킹을 했다. 서부 구자라트주 기르숲 국립공원에서 사자들과 함께 지내는 유일한 사람인 힌두교 사제를 위해서도 투표소가 설치됐다.
통신은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한 아루나찰프라데시주의 간디그람 지역으로 떠난 선관위 직원들과 보호 임무를 맡은 군인들 일행의 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투표기와 선거인명부 등을 지니고 총선 개시 일주일 전 여정을 시작한 그들은 먼저 3시간 동안 차량을 타고 관광명소인 마이오로 향했다. 그리고는 공군 헬리콥터에 탑승해 163㎞를 이동, 비조이나가르 지역에 도착했다. 이는 사실 날씨가 도와준 덕택이었는데, 만약 악천후였을 경우엔 두 지역 사이에 도로가 없어 꼬박 6일 동안 ‘도보 행군’을 해야만 했다고 통신은 설명했다.
마지막 관문은 특히 험난했다. 햇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둡고 무서운 정글(12㎞ 구간)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코끼리 무리의 급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 8시간에 걸친 행군 끝에 이들은 최종 목적지인 간디그람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 결과 242명의 유권자도 투표를 할 수 있었다. 이 지역 선거 책임자인 칼링 타옝은 “두꺼운 덤불로 덮인 아열대 숲을 지나가야 하므로 체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45세 이하 직원들이 선호된다”고 말했다.
‘벽지 투표소’는 이외에도 많다. 북부 인도령 카슈미르의 라다크 지역에는 해발 4,327m 지점에 12명의 유권자를 위한 투표소가 마련됐고, 이보다 더 고도가 높은 곳에는 선관위 직원들이 산소통을 짊어지고 가기도 한다. 또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에는 악어와 바다뱀이 득실대는 강을 건너야 도착하는 투표소도 있다. 아울러 중서부 차티스가르주의 일부 지역은 험난한 정글 지형, 반군 무장세력 등의 위험 요소까지 도사리고 있다. AP통신은 인도의 이런 규정에 대해 “아무리 먼 곳에 떨어져 있다 해도 모든 유권자한테 (선거가) 찾아가야 한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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