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 노조 가입ㆍ사업장 내 쟁의 금지’ 등 노사 요구 수용에도 양측 반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노사정 합의가 불발되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15일 중재안을 내놨다. 지난해 11월 내놓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을 골자로 한 공익위원안에 경영계의 요구사항을 수용한 일종의 절충안이다.
ILO 핵심협약 취지와는 맞지 않다며 노동계가 반발했던 내용이지만 현실적으로 관련 법 개정과 협약 비준을 추동하려면 경영계 요구를 일부 수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관련 논의를 진행한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ㆍ관행개선위원회(이하 노사관계개선위)의 박수근 위원장은 사실상 멈춘 노사정 논의가 이번 발표를 계기로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이날 노사관계개선위가 내놓은 공익위원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국제노동기준을 고려, 사업장 내 생산시설 등의 점거 행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를 특정한 경우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조 할 권리를 강화한다면 동시에 경영권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경영계가 요구한 5가지 사항 중 2가지를 수용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는 특히 경영계의 핵심요구 중 하나다. 경영계의 숙원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에 대해서는 반대를 다수안으로, ‘허용하되, 파견근로자에 대해서는 불허’를 소수안으로 제시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조항 삭제’에 대해서는 7월까지 추가 논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위는 전체회의 등에서 최종합의가 이뤄지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 공익위원안을 국회로 제출할 예정이다. 공익위원안은 사회적 합의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사노위 운영위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다면 입법과정 등에서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경사노위의 중재안과 유럽연합(EU)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생산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노사정위 의제별위원회 차원에서나마 합의안이 도출된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도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더 첨예한 쟁점인 ILO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노조법 개정은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비교적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이날 공익위원안에 노사 모두 강하게 반발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 등을 일부 수용한 것과 관련해 한국노총은 “명백히 현 제도를 후퇴시키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선비준 후입법 조치’를 요구했다. 민주노총도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노조 공격권 요구까지 포함해 개선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노사 간 입장을 객관ㆍ종합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실체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논의의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처를 취했으니 정부가 판단 할 차례”라며 “공익위원안을 바탕으로 노사관계법 개정에 대한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먼저 제안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권고했다. 김민석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노사 의견을 충분히 듣고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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