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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제기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딸의 KT 특혜채용 의혹이 수사가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 추려도 예의 채용비리와 궤를 같이 한다. 2011년 KT 윗선을 통해 이력서가 인사 관련 부서에 전달돼 계약직에 채용됐고, 이듬해 하반기 KT 본사 공채 시험에 합격해 2013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의원 딸의 채용과정 등에 개입한 혐의로 지난달 말 서유열 전 KT 사장이 구속되면서 드러난 실체는 비정상의 극치였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의원의 딸은 공채 당시 지원서를 내지 않았고, 서류전형과 적성검사가 끝난 뒤에야 지원서가 제출됐다. 이어진 온라인 인성 검사에서 떨어져 다음 전형인 면접을 볼 수 없었지만 면접 대상에 포함됐고 최종 합격했다. ‘누구나’에게 동일하게 제공돼야 할 기회를 ‘누군가’에게만 특별히 안겨줬다는 얘기다. 수사 과정에서 서 전 사장은 “지난 2011년 김 의원에게서 딸의 지원서를 직접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딸의 취업에 국회의원인 아버지가 직접 나섰고, KT는 소위 ‘보험용’으로 현직 여당 국회의원의 딸을 채용했다는 게 현재로서는 상식적인 의심이다. 딸의 계약직 채용과 정규직 전환 등의 시기와 당시 김 의원이 이석채 전 KT 회장의 국회 증인 채택을 저지한 시기가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찌 보면 양측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였으리라. 김 의원이 “야당 탄압, 정치 공작”이라고 반박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들을 뒤집는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경우 의심은 결국 또 하나의 채용비리로 귀착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김 의원 딸의 채용비리 의혹은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상ㆍ불공정 채용과 관련해 대대적으로 이어지는 ‘적폐 청산’과 무관치 않다.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 이 권력을 방패막이 삼아 성장하려는 세력들을 우리는 그간 진저리 나게 지켜봐 왔다. 강원랜드, 서울교통공사 등을 비롯한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최고 직장 중 하나인 은행권도 같은 비리에 전ㆍ현 최고경영자들이 재판장에 섰거나 서고 있는 것이 비근한 예다.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 하고 없는 사람은 도전조차 봉쇄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당함과 불평등을 근절해야 한다는 데 반대할 국민들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이번 정부에서도 민간 기업 고위직에 속속 포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이러니다. 최근 기자 출신 한정원 청와대 정무수석실 전 행정관이 메리츠금융지주 브랜드전략본부장(상무)으로, 더불어민주당 기획조정국장을 지낸 황현선 청와대 민정수석실 전 행정관이 구조조정 전문회사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로 이동한 것을 채용비리라는 적폐와 달리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찾을 수 없어서다. 둘은 모두 금융권 분야 경력이 전무하다. 이들의 낙하산 논란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소관 기관에서는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고 받았다"고 밝힌 점은 실망스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조인근씨가 한국증권금융 상임감사를 꿰찼을 때도 같은 이유였기에. 더욱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취임사에 기대가 컸기에.
국민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의미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렇게 선택된 대통령은 한정된 시간(5년) 속에 자신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방향, 철학을 이뤄낼 수 있도록 많은 권한을 부여 받는다. 다만 대통령을 도왔다는 이유로,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전문성조차 없는 인물들이 수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으며 민간기업 고위 임원 자리를 꿰차도록 할 권한까지 국민들이 위임하진 않았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정부가 적폐 행위를 버젓이 하는 한 신뢰를 보낼 국민, 많지 않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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