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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알바 월 90만원” 가난한 장녀 노린 ‘대학가 이희진’

입력
2019.04.16 04:40
수정
2019.04.16 10: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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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5> 대학생주식투자동아리 ‘골든 크로스’ 사건 

 

 

 ※사기를 포함한 지능범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미끼에 낚이는 순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지능범죄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그 덫을 피해가는 지혜까지 전해드립니다.

2016년 9월 서울 소재 한 대학 커뮤니티에 게시된 동아리 홍보글. 인터넷 캡쳐
2016년 9월 서울 소재 한 대학 커뮤니티에 게시된 동아리 홍보글. 인터넷 캡쳐

‘17회 OO증권대회 2위’

‘1회 비트코인 투자대회 1위’

2016년 3월, 눈 앞에 닥친 취업 문제에 올인하고 있던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반 황모(27)씨의 눈길을 확 끌어당긴 문구였다. 황씨 목표는 안정적이고 연봉도 두둑하다는 금융권.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를 뒤적이다 주식투자연합동아리 ‘골든 크로스’를 발견했다.

살펴보니 각종 금융기관이 진행한 주식투자대회에서 1, 2위 성적을 낸 잘 나가는 연합동아리였다. 이런저런 취업 사이트에서 이 동아리 덕 좀 봤다는 글도 자주 보였다. 실력파 회원 100명 이상이 활동한다는데 신입회원 가입 문턱도 높지 않았다. 학벌, 나이, 학번도 따지지 않았다. 주식을 전혀 몰라도 괜찮다 했다. 가입 신청도 카카오톡으로 학생증만 찍어 보내는 게 전부였다. 활동도 어디서 무얼 해야 한다는 둥 요란한 게 아니라 온라인 활동이 전부였다. 바쁜 시간 쪼개 써야 하는 취업준비생 처지에 딱이라 생각했다. 황씨는 “마침 금융권 취업이 목표여서 그 때는 단순하게 주식투자동아리 활동 경력이 있으면 이력서 쓰는 데 도움되겠지 정도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취업이 곧 골든 크로스(‘주가의 강세전환’을 뜻하는 용어)라 믿었다.

대학생 주식투자 동아리'골든 크로스' 사건일지. 강준구 기자
대학생 주식투자 동아리'골든 크로스' 사건일지. 강준구 기자

 ◇ “몇 년치 학비가 날아가는데도 몰랐다” 

그런데 이 활동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황씨를 괴롭히고 있다. 동아리 가입 이후 황씨는 당시 법정 최고금리(27.9%)로 저축은행에서 1,500만원을 대출 받은 빚쟁이가 됐다. 아니, 그 때는 자신이 빚쟁이가 되는 지도 몰랐다. 황씨는 “편의점에서 김밥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눈 앞에서 몇 년 치 학비가 날아가는 데도 그걸 몰랐다”며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지난해에 취업했다. 하지만 취업 뒤 제일 먼저 세운 계획은 채무 변제였다. 금융시장에 대한 약간의 정보, 그리고 이력서에 쓸 한 줄 정도의 경험만 원했던 황씨는 왜 빚쟁이가 돼야 했을까.

소원 오빠가 카카오톡으로 피해자에게 동아리 스태프직을 제안하고 있다. 독자 제공
소원 오빠가 카카오톡으로 피해자에게 동아리 스태프직을 제안하고 있다. 독자 제공

골든 크로스에 가입하자 황씨는 수백 명의 전국 대학생이 활동하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초대됐다. 동아리 회장 김소원(34)씨는 이 단톡방의 ‘신’이었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생이라는 김씨는 주식 투자로 월 1억 원을 벌어들인다 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할 나이가 한참 지났지만 학업까지 미룬 채 주식투자에 열중한다 했다. 예전에 기록했다는 ‘최고 수익률 3,600%’는 그 증거였다. 김씨는 대화방에서 수시로 자신의 투자 수익률 그래프를 보여줬고, 자신만의 투자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오프라인 강의도 열었다.

 

 ◇여대생 특별관리한 주식의 신 ‘소원 오빠’ 

특이한 점은 골든 크로스 단톡방이 여학생들로만 이뤄진 방과 남학생들이 섞여있는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김씨는 남학생들이 섞여 있는 방에선 꼭 필요한 말만 했다. 하지만 여학생들만 모인 방에서는 적극적으로, 또 다정다감하게 활동했다. 여대생들은 이런 김씨를 ‘소원오빠’라 부르며 따랐다. 김씨는 자신을 돕는 동아리 운영진, 스태프들도 모두 여성으로 구성했다. 누군가 물었더니 “예전에 남성 회원들이 사고를 자주 일으켰다”고 했다. 하기야 그 즈음 때의 남자들이란. 여대생들은 금세 의심을 풀었다.

소원 오빠는 자신이 보유한 고급 외제차 사진 등을 보여주며 재력을 과시했다. 독자 제공
소원 오빠는 자신이 보유한 고급 외제차 사진 등을 보여주며 재력을 과시했다. 독자 제공

소원 오빠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씨와 닮은 꼴이었다. 자신의 화려한 사생활을 담은 사진들을 회원들에게 자주 보여줬다. 고급 외제차와 예쁜 여성 스태프들이 과시 수단이었다. 스태프들 가운데서도 소수의 인원은 요트 위에서 열린 선상파티에 초대받기도 했다. 소원 오빠의 이런 사진을 보고 회원들은 그에게 더 많은 믿음을 보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고가의 차량과 수영장이 딸린 집을 공개하며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던 이씨와 흡사한 전략이었다.

 ◇ ‘스태프가 되면 말이야’ … 뻗치는 마수 

소원 오빠는 일단 이렇게 환심을 산 뒤 회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했다. 별도 활동비와 복지 혜택을 줄 테니 스태프로 일해보겠냐는 제안이었다. 외제차 공유, 월 2회 프리미엄 영화관 관람, 해외선물옵션 관련 정보 제공 등이 스태프에게 주어진 혜택이었다. 황씨도 곧 소원 오빠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어리둥절하기보다 자신이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

스태프가 되려면 ‘적합성 면접’을 치러야 하는데, 소원 오빠가 직접 면접한다 했다. 투자 관련 정보도 있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면접이 좀 황당하긴 했다. 시내에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나온 소원 오빠가 황씨를 조수석에 태운 채 돌아다니면서 진행됐는데, 질문도 투자 관련 이야기가 아니라 “월 생활비가 얼마냐” “아르바이트를 하냐,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냐” “남자친구가 있냐” 같은 이야기였다. 고급 외제차만 탔다 뿐, 추레한 소원 오빠의 행색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 땐 사고 방지를 위해 개인 내력을 파악하고, 투자에 전념하다 보니 일종의 ‘너드(nerdㆍIT업계의 천재 괴짜들)’ 같은 것 아니겠느냐 하고 말았다.

소원 오빠는 이렇게 모은 여대생들에게 다달이 수십만 원씩 수익금을 주겠다 했다. 명목은 다양했다. 대학 홈페이지, 개인 블로그 등에 골든 크로스 홍보글을 올리면 활동 실적에 따라 35만~70만원을 준다, 투자금을 내면 선물옵션에 투자해 월 35만~90만원씩 돌려 준다 등등. 투자 계약서를 작성할 땐 “투자에 따른 리스크는 ‘갑’(소원 오빠)이 감당한다”는 대목을 보여줬다. 원금 손실을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다. ‘알바’에 목 메던 여대생들이 솔깃할 얘기들이었다.

대학생 주식투자 동아리 '골든 크로스' 조직도. 강준구 기자
대학생 주식투자 동아리 '골든 크로스' 조직도. 강준구 기자

 ◇고졸 아르바이트생으로 둔갑시켜 대출 사기 동원 

하지만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원 오빠는 “수익금을 받으려면 몇 가지 서류와 절차가 필요하다”며 신분증, 공인인증서 등 개인정보를 받아냈다. 카톡 메시지로 △나이스지키미(신용정보사이트) 회원 가입 후 ID, 비밀번호 보내기 △신분증 사진 보내기 △인터넷뱅킹 사진 보내기 △자주 쓰는 이메일 주소 알려 주기 등을 명령했다. PC방에 직접 동행하거나, 스태프를 보내기도 했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소원 오빠는 이렇게 확보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2015년 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여대생 433명 명의로 4개 저축은행에서 54억8,000만원을 대출받는 등 모두 59억2,000만원을 뜯어냈다. 1명당 1,000만~1,500만원 가량을 받아 가로챈 셈이다.

간혹 여대생의 신용도가 낮아 대출이 까다로울 경우, 대출 중개업자를 끼고 작업하기도 했다. 중개업자 정모(48)씨는 소득 없는 여대생들을 카페, 고깃집 등에서 월 100만원 받는 고졸 알바생으로 둔갑시켰다. 회원 명의 통장에 꼬박꼬박 돈을 넣어 월급을 받는 것처럼 위장하고, 금융기관에서 전화할 것에 대비해 예상 질문과 답안을 연습도 시켰다. 주 범죄 타겟이 사회 경험 없는, 대학에 갓 입학한 1, 2학년생들이다 보니 대출 과정에 대한 이해나 의심은 적었다. 일부 회원들은 ‘대출’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소원 오빠는 “표면상 대출일 뿐이다” “기업과 국가가 원금을 보장한다”며 속였다.

그래서 소원 오빠는 수익금을 나눠 주기라도 했을까. 59억2,000만원 가운데 실제 분배된 금액은 7억 원에 불과했다. 투자 수익은커녕 추가 모집한 회원들에게 받은 돈으로 돌려막기 하는데 급급했다. 이 틈은 서서히 벌어졌다. 수익금을 못 받게 된 일부 여대생들이 뒤늦게 고소하면서 소원 오빠 사기극의 그래프는 내려 앉기 시작했다. 광주고법은 유사수신행위규제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사기) 위반 혐의로 8년형을 선고했다. 수사 재판 과정에서 ‘김소원’은 가명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실제 이름은 박모씨였다.

소원 오빠가 개최한 요트 파티에 참석한 골든 크로스 스태프들의 모습. 독자 제공
소원 오빠가 개최한 요트 파티에 참석한 골든 크로스 스태프들의 모습. 독자 제공
저축은행 대출피해액. 강준구 기자
저축은행 대출피해액. 강준구 기자

 ◇책임감 강한, 형편 어려운 장녀를 노렸다 

‘소원 오빠’ 박씨는 2015년에도 비슷한 짓을 하다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골든 크로스 활동을 하면서 박씨는 범행 대상을 신중하게 골랐다. ‘적합성 면접’은 그 때문에 만들어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녀가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형편이 어려워야 수익에 혹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집안의 장녀라면 문제가 생겨도 적극 나서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 깔렸다. 황씨는 “나중에 보니 피해자들 중에 유난히 장녀들이 많았는데, 책임감이 강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골든 크로스 피해자들은 여전히 빚을 갚아야 한다. 알바를 이중삼중으로 뛰는 피해자도 있고, 사채에 손댔다 더 큰 고통을 받은 이들도 있다. 돈도 돈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신적 충격도 크다. 처음엔 사기 피해자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채무 변제 압박을 받게 되자 정신과 치료를 자청하는 이들도 있다. ‘소원 오빠’ 박씨는 “고소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걱정이 하나 더 있다. 나중에 출소한 뒤 박씨가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다. 악몽은 여기서 그쳐야 한다.

광주=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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