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복ㆍ산후조리비ㆍ아동수당… 주민 95% 만족
청년 지급 지역화폐 ‘깡’ 악용 늘고 지역간 불균형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는 직장맘 장희진씨는 지난해 12월 말 세 쌍둥이를 출산한 뒤 큰 고민에 빠졌다. 건강관리사(옛 산후도우미)도 생각해 봤지만 비용이 너무 컸던 탓이다. 정부의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지원사업’은 중위소득 100%(3가족 월평균 소득 370만원 이하)까지만 가능한데 맞벌이를 하는 장씨는 소득이 이보다 높아 대상이 되지 못했다. 뒤늦게 성남시에서 소득과 관계없이 50%를 지원해 준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장씨는 “세 쌍둥이다 보니 건강관리사 월 이용비가 400만원이나 되는데 시에서 지원해 준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감사했다”며 “순간 성남시민인 게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성남시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직장을 다니는 A씨는 시로부터 받는 청년배당으로 엄마와 이른바 ‘지역화폐 깡’을 해 사용하고 있다. 성남지역 시장에서 장을 봐야 하는 엄마와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A씨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A씨는 “대부분 시간을 서울에서 지내고 있지만 시가 관내에서만 쓸 수 있는 지역화폐를 지급하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져 이런 방식으로 융통하고 있다”면서 “돈을 주는 것은 고맙지만 정말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교한 복지를 추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성남시 ‘프리미엄 복지’ ...나이 제한만 있을 뿐 소득제한 없어
대한민국 대표 부촌 분당신도시를 품은 성남시는 복지행정분야에서 정부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수준 높은 복지정책을 주도하며 연일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다는 지적과 부자 지자체의 돈자랑이라는 비아냥이 혼재한다.
2015년 당시 이재명 시장(현 경기지사)이 주도한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 등 이른바 3대 무상복지 사업은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을 정착시켰고, 은수미 현 시장에 이르러 ‘출산장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아동수당 플러스’ 등으로 확대하면서 ‘프리미엄 복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중 일부 사업은 이재명 지사가 경기지사 당선 후 경기도 전체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명품복지와 포퓰리즘의 모호한 경계를 달린다는 비난도 있지만 성남시는 가용한 재원을 활용한 것으로 결코 허투루 예산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보도블록을 교체하지 않고, 무분별한 공약형 토목 및 건축 공사를 줄여서 복지행정을 추진했다”며 “추가재원도 아니고 빚도 내지 않고, 지방채 발행 없이 정해진 재원 내에서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시가 2016년 상반기 청년배당 수혜자 2,866명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 결과 96.3%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생활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95%를 넘었고, 시 복지정책에 만족한다는 응답도 97.1%가 나왔다.
성남시가 보편적 복지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은 넉넉한 살림 덕분이다. 여기에 시 복지사업 일부가 경기도 사업으로 확대되면서 예산부담이 줄어든 데 반해 자율적 사용이 가능한 가용예산은 늘어난 것도 한몫 했다.
성남시가 올해 첫 도입한 ‘아동의료비 상한액’도 이 때문에 가능했다. 재정적 안정화가 이뤄지다 보니 만 18세 이하 아동이 상해를 입어 병원에서 치료비가 100만원 이상일 경우, 100만원 이상의 금액은 시가 부담하는 것으로 그만큼 재정적 여력이 생겼기에 가능하다.
성남시의 올해 예산은 모두 2조893만2,200여만원(일반회계 본예산 기준)이며, 이중 사회복지예산은 8,840억원(42.3%)이다. 올해 이들 9개 보편적 복지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450억원 정도다. 성남시장이 예산 범위내에서 자율적으로 사용 가능한 가용예산이 연간 3,0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시의 복지사업은 얼마든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보편적 복지, 사각지대는 없나
다만 성남시의 보편적 복지 수혜자가 늘면서 이를 악용하거나 관리 사각지대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성남시도 이를 알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 없이 없는 상태다.
또 성남형 보편적 복지사업이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지원을 위한 지원’에 급급한 사업으로 전락했다는 점도 논란의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고,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사업임에도 이를 중단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바꿔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는 “지역화폐로 계산하는 대다수는 젊은 자녀를 둔 50~60대 남자들”이라며 “자녀들이 받은 지역화폐를 대신 사용하는 것으로, 잘못 사용되는 대표적 사례“라고 꼬집었다.
정부와의 마찰도 적지 않다. ‘청년배당’ 사업은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건 사업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명칭도 ‘청년기본소득’으로 바꿨고, 2년 한시적으로 추진한 뒤 결과를 보고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발 물러나 있다.
‘산후조리비’ 사업도 산후조리원 사용금액이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산모용품 구입 등 산모가 쓸 수 있는 돈으로 사용처가 바뀌었다.
또 △부유층 자녀에게까지 지급할 필요가 있느냐, △지역간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10~20%를 선별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나 이들을 포함해 그냥 모두 지급하는 금액이나 비슷하기 때문에 다 줘도 다를 게 없다”며 “그들도 세금을 내는 성남시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OECD국가 일자리 세 개 중 한 개가 복지 분야에서 나올 만큼 복지가 성장에도 효율적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다만 보편적 복지 도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국가적 노력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보편적 복지를 도입하면 재정 여건과 관계없이 지속 가능해야 하는 것인데 계속 지급하다 보면 자칫 지방재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한 번 지원한 사업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보편적 복지 확대에는 면밀한 검토와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