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암(勉菴) 최익현(1833~1906)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추모제가 13일 충남 청양군 목면 송암리 모덕사에서 봉행됐다.
면암의 항일거의 113주년을 맞아 열린 이날 추모제는 유족을 비롯해 모덕회원, 전국의 유림, 나소열 충남 문화체육부지사,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대통령 헌화를 시작으로 제향, 행장 낭독, 추모사, 면암찬가 제창,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경내에는 전국 25곳에 이르는 면암의 사우 및 유적 사진이 전시돼 선생의 업적을 되새겼다.
김 군수는 “면암 추모제를 봉행하면서 벅찬 가슴을 진정하기 힘들었다”며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살신성인하신 선생의 숭고한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진정한 사표”라고 말했다.

면암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등에 따른 재정 파탄을 들어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상소해 관직을 삭탈당했다. 이후 일본과의 통상조약과 단발령에 격렬하게 반대해 투옥됐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그에 동조한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등 을사오적을 처단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면암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4월, 74세의 고령으로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조직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순창에서 패해 일제에 체포된 뒤 일본 쓰시마섬(대마도)에 유배됐다. 면암은 유배 생활 중 “굶어 죽을지언정 왜놈 밥은 먹지 않겠다”며 단식했다. 면암은 그해 11월 단식 후유증 등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면암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청양군 유림들이 1916년 발의해 1913년 공덕사를 짓고 선생의 유패를 모셨다. 공덕사는 광복 이후 중수를 거치며 고종황제의 밀지에 나오는 ‘모경숙덕(慕卿宿德)’ 숙어 가운데 두 글자를 딴 모덕사로 바뀌었다. 모덕사는 1984년 충남도문화재자료 제 152호로 지정됐다.
최정복 기자 cjb@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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