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광명시의 한 귀금속 판매점.
귀금속을 사는 척 하던 A(19)씨가 230만원 상당의 순금팔찌(41.25g)을 보여 달라고 한 뒤 주인이 꺼내주자 이를 들고 달아났다.
귀금속 사장은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며 쫓아갔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 어디선 가 한 청년이 나타나더니 “(범인이 간 방향이) 어느 쪽이에요? 가방 좀 들고 계세요”라는 말과 함께 저 멀리 도주하고 있던 범인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청년은 얼마 되지 않아 범인 A씨를 붙잡았고, 출동한 경찰에 인계했다.
귀금속 사장은 청년에게 “못 잡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어디선가 나타나 쏜살같이 뛰어 범인을 붙잡은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성지고 3학년 우의기(17)군이다.
우군은 당시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에 가기 위해 길 건너편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다. “도둑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신호가 바뀌자 무작정 뛰었다는 게 우군의 설명이다.
우군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무작정 뛰어가 목덜미를 붙잡았다”며 “이어 헤드락을 걸었는데 범인이 반항하지 않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범인이 흉기를 소지했을 수 있었을 텐데 무섭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다”며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는 우군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우군의 아버지는 광명시에서 25년간 자율방범대에 가입해 지역사회 범죄예방을 위해 봉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이 반항하지 못한 이유는 우군의 다부진 체격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 우군은 키 179cm, 몸무게 72kg의 대한축구협회 K3리그 어드밴스 포천시민축구단 중앙수비수 선수다. 경찰도 “평소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격에 아버지를 닮아 대범하다 보니 범인이 기가 눌리지 않았겠느냐”라고 설명했다.
우군의 장래 희망은 국가대표 선수. 그가 롤 모델로 삼은 선수는 네덜란드 출신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FC 수비수(DF) 버질 반 다이크(virgil van dijk)다. “반 다이크 선수처럼 훌륭한 수비수가 되는 게 저의 꿈”이라고 말하는 우군.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우 군의 목소리는 앳되면서도 힘이 넘쳤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우군에게 남다른 용기와 기지를 발휘해 절도범을 추격, 검거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12일 오후 표창장과 함께 범인검거 보상금을 수여했다.
또 범죄예방이나 범인검거에 기여한 시민들 중 모범적인 사례에 대해 ‘우리동네 시민경찰’ 명칭을 부여하는 방침에 따라 우군을 ‘우리동네 시민경찰’ 1호로 선정했다.
우군은 “표창과 포상금에 우리동네 시민경찰 1호로 선정돼 기쁘고 자랑스럽다”며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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