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 사상 초유의 ‘5선’ 총리를 눈앞에 두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일(현지시간) 투표 직전까지만 해도 중도연합을 이끄는 베니 간츠 이스라엘 청백당 대표의 기세는 등등했다. 하지만 투표함이 열리자 그 예상은 뒤집혔다. 외신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표심이 승부를 갈랐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휩쓸고 있는 우파 돌풍은 신세대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정 이후에 태어난 이스라엘 신세대들은 팔레스타인의 계속되는 ‘인티파다’에 시달려 왔다. 겉으로는 평화 상태였지만 계속되는 시가전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요나한 플레스너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장은 “그들에게는 평화에 대한 갈구 또는 희망이란 것은 이질적”이라고 말했다.
많은 젊은 유권자들이 군복무 중인 것도 청년층 우경화의 원인 중 하나다. 이스라엘의 모든 시민은 남녀를 불문하고 18세가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 국가 안보에 민감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35세 이하 시민들은 군생활 중 2차 인티파다와 2006년 레바논 전쟁, 2008년부터 이어져온 하마스와의 세 번에 걸친 분쟁을 직ㆍ간접적으로 겪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바로 이 점을 파고 들었다. 대팔레스타인 강경책으로 표심 공략에 나선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선거 직전인 6일,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JP)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18세에서 24세 사이 유권자의 65%, 25세에서 34세 사이 유권자의 53%를 끌어들였다고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가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이스라엘 유권자의 우경화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0년 전 조사에서 40%만이 ‘우파’라고 답변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는 55% 이상이 우파 성향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안보 문제에서는 강경책을 펼치는 것과 반대로 네타냐후 총리는 청년층에 ‘서커스’를 제공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18세에서 25세까지 인구 중 40%가 지난 1년간 마리화나를 경험해 봤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경제 문제를 다루는데에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 2009년 세계 금융 위기가 지나간 후에야 총리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좋은 첨단 기술 분야를 발전시켜 왔다. 네타냐후 측 선거전략가인 존 맥러플린은 “청년층은 안보와 경제라는 두 가지 이슈에 대한 네타냐후의 정책을 좋아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부’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가 몸담았던 노동당은 점점 당세가 약화되고 있다. 1948년 건국 당시부터 1977년까지 장기 집권에 성공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리쿠드당 등 우파 연합에 밀려 버렸다. 특히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의 암살 이후 노동당은 그 동력을 급격히 잃었다. 노동당이 배출한 마지막 총리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집권한 에후드 바라크다.
이번 선거에서도 노동당은 6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젊은 유권자들은 노동당을 무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세부터 24세까지의 유권자 중 단지 3%만이 노동당을 선택했다. 65세 이상 유권자의 10%가 노동당에 투표한 것과 대조되는 수치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좌파의 집권이 국익에 해가 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네타냐후 효과다. 좌파 조직인 메레츠의 10대 지지자인 이타이 글레이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우리는 좌파가 권력을 가졌던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좌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젊은 층은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식 진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자 문제나 사회안전망, 국가의료보험 문제 등을 다룰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분야에서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은 젊은 층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
네타냐후가 대팔레스타인 강경책을 쏟아내는 것은 최근 인구 급증 양상을 보이고 있는 유대교 근본주의자 집단인 ‘하레디’에게서 표를 얻어내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타냐후가 처음 집권했던 1996년 이후 하레디 인구는 33% 증가했다. 향후 10년 동안에 50%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대교 근본주의자들은 아랍계가 이스라엘의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중도 연합이 표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JP는 12일 “미국 청년들은 점점 진보적이 되고 있지만 이스라엘에선 반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며 “종교의 영향이 크다”고 보도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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