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에 따른 정책 아닌, 정책에 맞춘 진단” 비판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앞두고 “국내 경기에 ‘개선 모멘텀’이 있다”던 공식적인 경기 판단을 한달 만에 거둬들였다. 대신 “대외경제 여건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이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을 내세웠다. 추가 예산(추경)이 필요할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킨 셈이지만, 정부의 ‘갈지(之)자’ 경기판단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울’해진 정부 경기 진단
기획재정부는 12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일명 그린북) 4월호’에서 최근 한국 경제를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반도체 업황 부진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른 하방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설 연휴 요인을 배제한 올해 1∼2월의 평균적인 동향을 볼 때 광공업 생산과 설비투자, 수출 등 주요 실물지표 흐름이 부진한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그린북은 경제의 현 상황을 정부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담은 정부 공식 경기진단 보고서로 통한다. 단기 호재와 악재에 들썩이는 시장과 달리, 중장기 흐름까지 감안한 정부의 공식 경기 판단은 무게감이 다르다.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방향을 읽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의 경기 판단이 너무 가볍게 변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앞서 지난달 그린북에서 정부는 올 1월의 산업활동 지표 ‘트리플 증가’세를 강조하면서 “연초 산업활동 및 경제심리 지표 개선 등에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주요 산업활동 지표가 전월 대비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부진한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추경 입장도 급변
실제 최근 경기는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혼재돼 있다. 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전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1.9% 감소했다. 소매판매, 설비투자, 건설투자도 각각 0.1%, 10.4%, 4.6%씩 뒷걸음쳤다.
반면 2월과 3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두 달 연속 20만명대를 기록했고,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0.4%)도 안정적이어서 일방적으로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런 혼재 상황은 산업활동 지표가 좋았던 반면, 고용 상황이 나빴던 연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식 경기 판단을 사뭇 다른 방향을 바꾼 것을 두고, “경기 대책을 위해 6조원 안팎 추경 편성을 공식화한 마당에 정부가 ‘긍정적 모멘텀’이란 표현을 유지하기는 어려웠던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뚜렷한 명분을 갖고 추진해야 할 추경에 대한 정부 입장 역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달 초만 해도 정부는 “추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면서 “필요하면 추경도 검토하라”고 말한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직전까지 “미세먼지 대책은 기존 재원(예비비)으로 최대한 해보겠다”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제 미세먼지는 물론, “경기 하방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민생을 지원하기 위한 추경 편성 작업을 진행 중”(지난 10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가 갈피 못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엄중해야 할 정부의 공식 경기 진단이 스스로 무게감을 잃으면서, 시장에서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정확한 상황 진단에 따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추진을 위해 상황 진단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낙관적인 경기전망을 했다가 추경을 해야 하니 비관적으로 돌아서는 등 정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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