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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낙태수술 한시적 거부권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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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낙태수술 한시적 거부권 달라”

입력
2019.04.13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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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법 개정 때까지 혼란”… 복지부 “진료거부권 부여는 불가능”

11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판결 촉구 의료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11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판결 촉구 의료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경기 남양주의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A(34)씨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11일 밤 잠을 설쳤다. 자신도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점은 기뻤지만, 직업인 입장에서는 마냥 환영할 수는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낙태수술을 원하는 여성이나 보호자들이 헌재 결정을 내세워 “이제 죄가 아니지 않냐”며 ‘당당하게’ 낙태수술을 요구할텐데, 이들에게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A씨는 “낙태가 유죄일 때에도, 낙태를 원하는 임신여성과 보호자들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았는데 이제 이들은 더욱 당당하게 나올 것”이라며 “앞으로는 수술을 거부하면 임신 여성이나 보호자들에게 험한 소리를 듣게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12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홈페이지에는 ‘환자는 낙태를 해 달라고 할 것이고 우린 아직 법 개정이 안 돼 못해 준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앞으로 (헌재가 관련 법 개정 시한으로 못박은 내년말까지) 1년 넘게 이 혼란의 시기를 어떻게 견뎌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한 회원의 글이 올라왔다.

헌재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의료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형법의 유죄 조항을 근거로 임신중절 허용 사유를 명시한 모자보건법이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이 법의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산부인과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됐다. 11일 헌재 결정 직후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개인 신념에 따라 낙태수술을 거부할 수 있게 진료거부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의료 현장에서는 관련 법이 개정돼 합법적 낙태수술의 허용범위가 넓어질 때까지는 수술을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울 강북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 B씨는 “낙태수술과 관련해 의사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리 상황이 딱해도 낙태수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낙태수술을 받으려는 환자가 이번 결정을 계기로 갑자기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정선화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이사(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미 낙태수술은 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낙태죄가 폐지돼도 낙태를 하려는 환자가 갑자기 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낙태 가능 범위가 넓어지면 오히려 여러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어, 무리하게 (불법) 낙태를 일삼았던 일부 병원의 문제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정치권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 관련법 개정을 위한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련 상임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입법과정을 주도해야 한다”면서 “보건복지위 차원의 당정협의를 조속히 개최한 뒤 대응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위 소속의 한 민주당의원실 관계자는 “낙태 허용 범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텐데 시민사회 또는 여성단체 활동했던 의원들이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요구하는 진료거부권 부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전까지는 의료계도 현행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때는 처벌을 받는다. 유전장애, 강간 등 모자보건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낙태수술은 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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