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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19일ㆍ강원 영월 26일 개최
서울 종로구와 강원 영월군이 개최하는 ‘정순왕후 선발대회’를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1세기에 60여 년을 수절한 여성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는 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전통 문화 행사에 너무 쌍심지를 켤 필요 있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12일 종로구와 영월군에 따르면 두 지자체는 각각 19일과 26일 ‘정순왕후 선발대회’를 연다. 취지는 똑같다. 정순왕후의 충절과 절개를 기린다는 명목이다. 정순왕후(1440~1521)는 조선의 6대 왕 단종의 부인이다. 양반 집 딸로 태어나 15세에 단종과 결혼했으나 18세가 되던 1457년 단종이 죽자 82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홀로 살았다.
종로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60여 년을 홀로 지내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하며 서러운 삶을 살았던 절개와 충절의 상징”이라고 정순왕후를 소개하고 있다. 영월문화재단도 “타고난 성품과 미덕으로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한 정순왕후의 정신과 삶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지닌 여성을 선발해 정순왕후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혔다.
◇만 15~20세 여성 지원자 3단계로… 2, 3등은 후궁
종로구 선발대회는 왕비를 뽑던 옛 절차, 그러니까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 3단계를 재현한다. 구청이 밝힌 공고문에 따르면 만15~20세 여성 지원자 10명이 참가하는 초간택에서는 △솥뚜껑 밟으며 입장 △부친 성함 한자쓰기 △다과 먹기 등 심사가 이뤄진다. 솥뚜껑 밟기는 나라의 안주인으로 간택된 여인이 궁궐에 들어올 때 뒤집어진 솥뚜껑을 밟고 들어오면서 부엌신에게 인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추려진 지원자 5~7명은 △개인별 절 △장기자랑 등으로 이뤄진 ‘재간택’에 응한다. ‘삼간택’은 소감 발표 등을 통해 최종 3명을 선발한다. 1위는 ‘정순왕후’, 2위와 3위는 단종의 후궁이었던 ‘김빈’과 ‘권빈’으로 뽑힌다. 이들은 9월 열릴 정순왕후 추모 문화제 어가 행렬에 참여한다. 영월군도 서류심사로 예선을 치른 뒤 16명의 본선 진출자를 대상으로 자기소개, 워킹, 합동공연 등의 절차를 거쳐 최종 6명을 뽑는다. 이들은 영월군 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게 된다.
◇“다과 먹기, 장기자랑으로 무슨 정신을 잇나”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종로구민 동모(27)씨는 “더 주목할만한 업적이 있을 법도 한데, 그저 왕이 죽은 뒤 오래 동안 홀로 살았다는 것만 기념하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 공감을 얻기 힘들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김경수(31)씨도 “정순왕후의 강인한 삶과 고귀한 뜻을 기리는 게 행사 취지인 거 같은데, 막상 선발 절차를 보면 다과 먹기, 장기자랑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신을 계승한다는 느낌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종로구민 송모(30)씨는 “종로는 역사적 상징성이 중요한 곳인 만큼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나간다는 차원에서 이해한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간택이라는 형식 등이 실제 적절한 지 검토했으나 역사적 고증을 통해 과거를 재연하는 행사라는 취지를 살리는 쪽으로 결정했다”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잘 취합해서 다음 행사 준비할 땐 반영하겠다”라고 밝혔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이규리 코리아타임스 기자 gyulee@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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