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통치 이념에서부터 외교 분야까지 바둑 활용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채택에도 영향
문재인 대통령에게 옥으로 만든 바둑알과 바둑판 선물
“바둑에선 치국(治國·나라를 다스림)의 도리를 배울 수 있다.”
그에게 바둑은 또 다른 인생의 거울이다. 기본적인 국가 통치 신념의 밑그림도 반상(盤上)에서 그려낸다. 바둑 애호가로 잘 알려진 시진핑(習近平·66) 중국 주석의 술회다. 시 주석의 바둑 사랑은 유명하다. 중국 아시안게임(AG) 조직위원회에서 최근 발표한 ‘2022년 항저우(杭州) AG’ 정식 종목에 바둑이 포함된 것도 시 주석의 이런 취향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게 바둑계 안팎의 정설이다. 바둑은 지난해부터 ‘2022 항저우 AG’ 정식 종목(본보 2018년5월18일 ‘반상스토리’(17))에 낙점됐다는 시각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바둑은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AG’에서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바 있다.
시 주석과 바둑의 인연은 1970년대 후반,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우연하게 이어졌다.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졸업(1979년)한 시 주석은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사무국장이었던 겅뱌오(耿飇·1909~2000년)의 비서로 일하면서 바둑과 접했다. ‘바둑이 전반적인 정세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믿었던 겅뱌오는 주변 직원들에게 바둑 입문을 권유했다. 시 주석과 절친으로 알려진 녜웨이핑(聶衛平·67) 9단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사회생활을 겅뱌오 전 부총리 겸 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로 시작했는데, 겅뱌오 전 부총리가 시 주석에게 바둑을 배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배웠다”고 말했다. 일본이 세계 바둑계를 점령했던 19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녜웨이핑 9단은 자국내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중국 바둑을 국제무대에 재조명 시킨 거성이다. 실제 녜웨이핑 9단은 1985년 시작된 ‘중·일 슈퍼대항전’ 1~3회 대회에서 자국내 마지막 주자로 등판해 세계 바둑계를 주름 잡았던 일본 최고수들을 상대로 11연승을 기록,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도 얻었다.
녜웨이핑 9단에 따르면 시 주석의 바둑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뒤늦게 반상의 세계에 스며든 시 주석이었지만 녜웨이핑 9단에게 특별 과외를 요청했을 만큼, 바둑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시 주석은 특히 고전에서 인용된 바둑에 대한 구절까지 항상 입에 달고 다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기가였던 시 주석의 바둑과 얽힌 일화들도 눈에 띈다. 2014년 7월, 시 주석의 방한을 기념해 열렸던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오늘 오신 손님들은 모두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분이 딱 한 사람이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시 주석의 시선은 이내 한국 바둑의 간판 스타인 ‘돌부처’ 이창호(44) 9단에게 향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이창호 9단은 중국에서도 매우 유명하다”며 “중국내 유수의 기사들도 이창호 9단을 이겨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다”고 극찬했다. 평소 이창호 9단의 팬임을 자처했던 시 주석은 이 9단과 직접 악수를 하면서 힘주어 크게 흔들었던 에피소드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 내용은 중국내 방송에서도 그대로 소개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방한한 시 주석에게 나전칠기로 만든 바둑알과 바둑통을 선물했다.
시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시에도 바둑 이야기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 주석은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과 함께 가진 만찬장 헤드테이블에서 바둑 이야기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덕담을 주고 받았다. “작은 바둑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문 대통령은 아마 4단으로, 바둑에 대한 조예 또한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에게 옥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알을 전했다.
한편, 바둑이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던 ‘2010 광저우 AG’에서 한국은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로 종합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광저우 AG 바둑 종목은 남자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 혼성페어전으로 진행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2022년 9월10일부터 2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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