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개입도, 부도덕성도 관행이라는 정부
기성세대는 몰라도 젊은 세대는 수용 못해
‘신재민들’에겐 관행도 적폐임을 직시해야
‘소신이 담긴 정책이 모두 관철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신과 정책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조율은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부처, 청와대, 나아가서 당과 국회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보완될 수도, 수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정책 형성 과정입니다.‘
이른바 ‘신재민 사건’이 불 붙던 올해 초,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고심을 거듭한 흔적이 묻어났다. 자극적이지 않은 점잖은 표현이었지만, 김 전 부총리의 글에는 이런 타이름이 있었다. ‘너희들이 잘 모르는 게 많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단다. 관행이라는 게 있어.’
한 젊은 전직 사무관의 폭로에 대한 반박 글을 굳이 공개적으로 남겨야 했을까 싶었지만, 내용면에선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이상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음을, 정무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게 되는 법이니까.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폭로한 핵심 두 가지, 즉 적자국채 발행 강요와 민간기업 인사 개입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부가 비판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그게 젊은 사무관의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짓밟을 만한 일이었을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민간기업 인사 개입은 역대 정부마다 되풀이돼 온 악습 아닌가. 기업들도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면 있는 부실 없는 부실 싹싹 끌어다가 밑바닥을 다지고 시작하지 않는가.
그때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용인의 기준이 필자 같은 기성세대와 신재민 같은 순수한 젊은 세대에게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촛불정신을 근간으로 적폐 청산에 매달리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기준이 더 엄격해야 한다고 믿는 게 당연하다는 것.
“요즘 같았으면 예전에 했던 행동들은 다 미투(#me too)로 고발됐을 거야”라는 기성세대 남성들의 ‘안도’가 그렇듯,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잣대는 법이나 제도보다 먼저 바뀐다. 청와대가 낙하산을 내리꽂는 것은 ‘관행’이어서 위법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을 것이라는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 대한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관행에 면죄부를 준 건 법일 뿐, 국민들 특히 ‘신재민들’의 도덕적 잣대까지 충족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통상 업무의 일환인 체크리스트”라는 청와대 해명이 과거 혹은 기성세대 기준에는 혹여 부합할지 모르지만, 촛불정부의 젊은 세대들까지 설득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건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이다.
연이은 인사참사도 그렇다. 청와대는 이른바 ‘조(국)-조(현옥) 라인’ 문책 여론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특별한 조치가 없다”고 한다. 청와대가 만든 인사검증 7대 기준에는 어긋나는 것이 없다는 이런 인식은, 저만치 앞서가 있는 젊은 세대는 물론 기성세대 정서와도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분명한 건 관행을 용인하지 않는 ‘신재민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을 타이르기 전에, 그들의 잣대를 쫓아가지 못하는 이 정부가 무엇이 잘못됐는지부터 짚는 게 순서다. 시대가 바뀌면, 더구나 촛불로 바꾼 변화라면, 로맨스도 불륜이 되고 관행도 적폐가 되는 게 당연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점점 등을 돌리고 있는 20대를 분석하는 강의를 듣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는 질끈 눈을 감은 채, 젊은층이 진보정부를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보수적이어서, 취업이 안 되거나 집 장만하기가 어려워져서 이 정부와 여당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까 우려된다.
정부는 엊그제서야 신재민에 대한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취했던 고발을 취하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당시 그의 진정성을 100% 받아들이지 못했던, 무딘 도덕성을 가진 기성세대 한 명으로서 이제나마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신재민들’에 대해 그런 미안함이 없다면 백날 젊은 세대의 민심에 현미경을 들이대본들 헛수고라는 걸, 정부도 깨달았으면 한다.
이영태 뉴스3부문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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