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였는데 엉뚱한 나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원자재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이 경기 침체를 겪는데 더해, 세계 경기가 요동치면서 아프리카의 투자 매력도까지 떨어진 탓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아프리카에 소홀하다는 인식까지 확산되면서, 미국의 1, 2위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브루킹스가 일제히 미국 정부에 대규모 원조 등의 조치로 아프리카가 중국 세력권에 넘어 가는 걸 막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 CSIS는 ‘죄 없는 행인, 아프리카는 왜 미ㆍ중 무역전쟁 피해를 보고 있나’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지난 달 말 공개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500억달러(약 57조원) 규모 중국 제품에 25%, 2,000억달러(약228조원) 규모 제품에는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전쟁을 매듭짓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이런 관세 폭탄은 여전히 투하 중이다.
CSIS는 미ㆍ중 무역전쟁의 충격파가 가장 심한 곳을 아프리카 제국으로 꼽았다. 보고서에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전문가들은 미중 분쟁 여파로 2021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민주공화국 등 주요 광물자원수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5%, 나이지리아ㆍ적도 기니 등 석유수출국들에서는 1.9%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을 이유로 최근 2019년도 아프리카의 성장 전망치를 3.3%에서 3.1%로 낮췄다.
CSIS는 무역전쟁에서 촉발된 세계 물가 하락과 중국의 수입 감소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취약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프리카의 대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752억6,000달러(약85조원) 수준으로, 원유와 광석 등 원자재 수출 의존도가 높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제조업에서 활로를 모색하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미비한 제조업 인프라와 불안정한 국내 상황 때문이다. CSIS는 남아공을 제외하고는 제조업 관련 선진국의 자본 유치 경쟁력에서 동남아시아, 남미에 밀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입장에서 문제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난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몰려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역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앞세운 막대한 투자와 함께 외교적으로도 ‘아프리카 발전의 동반자’로 자처하며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2018년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프리카 53개국 지도자들이 나란히 서서, 미국을 겨냥해 “보호무역주의에 맞설 것”이라고 천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거지소굴” 아프리카 비하 발언, 미 고위급 외교 사절의 방문 빈도수 감소,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 실종으로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쇠퇴할 조짐이라는 게 CSIS의 분석이다. 브루킹스연구소도 지난달 29일 열린 관련 세미나에서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높여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소는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정치권 지도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미국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CSIS는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협상의 적극 참여 △미ㆍ아프리카 간 무역협정보호 등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미국은 빠르고 손쉬운 이익에만 관심을 갖는 반면, 중국은 장기적 파트너십을 제안한다’는 말이 나오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는 경고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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