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100만건 넘을 수도”… 낙태 경험 여성 7.6%에 달해
헌법재판소가 66년 만에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국내에는 연간 5만건 이상의 인공임신중절(낙태)이 이뤄지고 있다. 암암리에 시행되는 낙태까지 포함하면 실제론 훨씬 많다는 것이 의료계의 견해다. 현행 모자보건법 상 허용되는 낙태의 사유는 강간에 의한 낙태 등 극히 좁은 범위로 한정돼 있지만, 실제로 낙태가 이뤄지는 주된 이유로는 학업과 직장 등 사회생활에 주는 지장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이 꼽혔다.
11일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의뢰해 진행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낙태 건수는 약 4만9,764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9~10월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온라인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른 추정치다. 이 같은 낙태 추정치는 2005년(34만2,433건)보다 7분의 1 수준으로 줄었는데, 복지부는 “피임과 응급(사후)피임약의 보급과 만 15~44세 여성 인구의 감소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낙태를 하는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데 실태조사에 누가 답을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우리나라의 일 평균 낙태 수술 건수를 약 3,000건으로 본다. 연간으로는 100만 건을 훌쩍 넘기는 숫자다.
해당 조사에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1만명 중 756명(7.6%)로 이들의 낙태 횟수는 평균 1.43회였다. 최대 7회의 낙태를 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낙태 이유(복수응답)로는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33.4%로 가장 많았다.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32.9%), '자녀계획(31.2%) 등의 이유가 그 뒤를 이었다. 이별이나 이혼, 별거 등으로 파트너와의 관계가 불안정(17.8%)하거나 파트너가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11.7%)라는 응답도 있었다. 태아와 모체의 건강문제로 인한 낙태는 각각 11.3%와 9.1%였다.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했기 때문에 낙태를 한 경우도 0.9%나 있었다.
낙태 경험 여성의 낙태 당시 평균연령은 29.4세로 절반에 가까운 46.9%가 미혼이었다. 혼인신고를 한 부부는 37.9%였고 그 외 사실혼ㆍ동거 (13.0%)나 별거ㆍ이혼ㆍ사별(2.2%) 상태인 경우도 있었다. 또 낙태한 이들의 대다수가 제대로 된 피임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외사정법ㆍ월경주기법 등 불완전한 피임을 한 경우가 절반에 가까운 47.1%였고, 응급피임약 복용을 포함해 피임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40.2%에 달했다. 콘돔, 자궁 내 장치 등의 피임비율은 12.7%에 그쳤다. 피임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임신이 쉽게 될 것 같지 않아서'(50.6%)가 가장 많았다. '피임도구(콘돔 등)를 준비하지 못해서(18.9%)’, '파트너가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16.7%)가 그 뒤를 이었고, '피임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라는 응답도 12.0%였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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