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의 낙태 처벌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11일 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헌재는 낙태죄 규정을 당장 폐지할 경우의 혼란을 감안해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도록 했다.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있었던 낙태죄가 사라지는 것이다.
헌재 결정은 낙태를 대하는 사회 인식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헌재가 2012년 재판관 8명(1명 공석)이 참여한 동일 사안에서 4대 4 합헌을 결정한 데 비해 이번에 재판관 7명이 위헌 의견을 낸 것은 국가가 여성의 신체를 통제ㆍ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과 결별할 때임을 보여준다. 낙태 문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건강권ㆍ행복권ㆍ재생산권 등 여성의 삶 전반을 규정하는 핵심 인권 이슈로 떠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낙태 금지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지가 쟁점이 된 이번 심판에서 헌재는 “모든 낙태를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위반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ㆍ경제적 사유에 의한 불가피한 상황을 외면하고, 모든 책임을 여성 혼자 떠안도록 구조화된 문제점도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헌재에 ‘낙태죄 위헌’ 의견을 낸 것도 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낙태 관련 논쟁이 전통적으로 ‘여성의 선택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띤 데 대해서도 헌재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인간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보호 정도와 수단을 달리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낙태 처벌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돼 태아 생명 보호가 실효적이지 않고, 오히려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ㆍ제도적 여건 마련이 태아 생명권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국가가 임신을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낙태 역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음이 헌재 결정으로 확인됐다. 이젠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임신 중절 여성에 대한 양질의 의료접근권 제공 등으로 논의가 옮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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