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중산층의 경제력이 지난 30년간 4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화 심화와 맥을 같이 하는 중산계층의 위축은 결국 지구촌 전체의 경제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경고했다.
10일(현지시간) OECD가 발간한 ‘위축된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국가들에서 중산층의 총소득은 1985년 부유층의 3.9배에 달했지만 30년 후인 2015년에는 2.8배로 크게 줄었다. 해당 비율이 6배였던 독일은 2.3배로 급락했고, 2.3배에 불과했던 미국도 그마저 1.5배까지 떨어졌다. 전체 경제규모의 성장세를 감안할 때 중위소득(총 가구 중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겨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의 75~200%인 중산층의 경제력 약화는 그만큼 소수 고소득 계층으로의 부의 쏠림이 심화했음을 의미한다.
중산층의 경제력 감소는 소득 증가 속도보다 주택과 교육, 건강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훨씬 더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라고 OECD는 분석했다. 특히 대도시 주택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이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됐다. 독일에서는 1995년 총 지출의 4분의1에 머물렀던 중산층의 주거비 지출규모가 2015년 3분의1까지 치솟았지만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8.4% 증가하는데 그쳤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한 OECD 주요국의 정책도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중산층의 조세부담 경감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 필수 생활비용 인상폭 제한 등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에서 밀려나는 가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OECD는 전체 중산층 가구의 20%가 소득보다 지출이 많고, 8가구 중 1가구는 부채 규모가 자산의 75% 이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OECD 회원국의 중산층 인구 비율 자체도 1985년 64%에서 2015년 61%로 떨어졌다. 스웨덴ㆍ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은 중산층 비중이 여전히 70%에 육박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에선 절반을 갓 넘는 수준으로까지 축소됐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70% 이상이 안정적인 고용 상태에 있었던 데 비해 밀레니엄 세대는 그 비율이 60%가 안 된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OECD의 보고서는 ‘자본성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지난 30년간 지구촌 전체 부(富)의 규모가 커졌는데도 중산층의 파워가 40% 가량 약화한 건 부유층 몫의 증가세가 훨씬 두드러진 결과라는 점에서다. 피케티 교수는 부의 불평등 완화와 금융ㆍ은행 시스템의 효과적인 규제를 위해 누진적인 자본세 부과를 제안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민주당 유력 후보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부유층 증세를 검토하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실제 OECD는 “튼튼한 중산층의 존재와 급속한 경제성장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이 있다”면서 “위축되고 성난 중산층이 늘어나면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경제성장과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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