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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1년 “곳곳 턱, 계단에 밥 한 끼 먹기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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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1년 “곳곳 턱, 계단에 밥 한 끼 먹기 힘들어요”

입력
2019.04.12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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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중구 한 약국 입구에서 2급 지체장애인인 주정수(64) 한국방송통신대 법률봉사단장이 턱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11일 서울 중구 한 약국 입구에서 2급 지체장애인인 주정수(64) 한국방송통신대 법률봉사단장이 턱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여기 바로 앞 길거리 편의점, 식당, 약국, 카페 다 들어갈 수 없을걸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1년을 맞은 11일 제일 다니기 어려운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내놓은 주정수(64) 한국방송통신대 법률봉사단장의 대답이다. 뭘 그런 뻔한 걸 묻느냐는 듯 웃었다.

주 단장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2급 지체장애인.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 당장 전동휠체어를 움직였다. 500m 남짓 불과한 서울 중구 삼일대로 거리를 30분 정도 돌아다니며 20여 곳이 넘는 편의점과 식당, 약국, 카페 입성을 시도했지만, 딱 한 곳 약국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턱이 낮은 편이어서, 그것도 때마침 밖을 내다보던 약국 직원이 나와 기자와 함께 휠체어를 들어주고서야 가능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오래됐으나 장애인들은 여전히 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가게마다 입구에 높은 턱이나 계단이 있어 들어갈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10층 안팎의 중층 규모의 빌딩이라 해도 휠체어 전용 출입구를 갖춰놓은 곳은 없었다. 간혹 턱이 없는 식당도 있었으나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엔 좁은 여닫이 문이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경사판을 놓아 둔 곳이 있었지만 바닥과 맞닿은 경사판 끝에는 역시나 턱이 있었다.

2급 지체장애인인 주정수(64) 한국방송통신대 법률봉사단장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거리의 편의점 앞에서 입구에 놓인 턱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2급 지체장애인인 주정수(64) 한국방송통신대 법률봉사단장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거리의 편의점 앞에서 입구에 놓인 턱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도움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 단장이 들어간 약국만 해도 직원이 나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다. 주 단장은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바쁠 땐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 지나가는 사람 옷자락을 붙잡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며 “그것도 턱이 낮을 때 가능해서 턱이 있는 곳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장애인등편의법이 제 역할을 못해서 일어난다. 이 법은 300㎡(약 100평) 이상 대규모 상점에 장애인 편의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작은 편의점, 식당, 카페, 약국 등은 제외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점을 감안, 2017년 12월에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해 2019년부터 신축ㆍ증축ㆍ개축되는 50㎡ 이상 공중이용시설에도 법을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보건복지부는 권고를 수용했으나 그 뒤 뚜렷한 진전이 없다. 건물주 등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액공제 제도 도입 등도 함께 권고했지만 기획재정부 등은 이를 거부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장애인들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생활편의시설 이용 및 접근권 확보'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장애인들이 11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생활편의시설 이용 및 접근권 확보'에 관한 진정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언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그래서 이날 인권위 앞에 모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인권단체들은 장애인의 실질적 접근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사단법인 두루의 최초록 변호사는 “한 책방에서 장애인을 위한 경사판을 놓으려 했는데 지나던 시민이 보행권을 침해당했다며 민원을 제기, 행정심판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며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 경사판 설치를 허가하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법 제정 이후 정부와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봐야 하지만 장애인 관련 문제는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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