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탈냉전 시기에 어떻게 생존했느냐는 이 미스터리 왕국을 유심히 보는 학자나 정부 인사들에게 큰 과제나 다름없다.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조성된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 체제하에서 오랜 동맹인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버림받은 북한이 붕괴되는 건 시간문제로 여겼으니 말이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쓴 ‘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는 이에 대한 물음과 부분적인 답을 찾는 기록이다. 저자는 북미국장 등 요직을 거친 37년 베테랑 외교관 출신으로 오랜 관찰과 자료를 엮어 북한의 외교적 생존방식을 구성코자 했다. 체제 위기가 극에 달했던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 중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이른바 ‘전략적 삼각관계’를 주도한 북한의 핵 외교전략이 책을 관통하는 얼개다.
냉전기 북한은 중∙소 분쟁 틈바구니에서 균형 외교로 경제ㆍ군사적 실리를 챙겼다. 급격한 사회주의 체제 몰락과 함께 형성된 탈냉전과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의 노선 전환으로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은 돌연 한반도, 동북아 외교의 중심축으로 우뚝 섰다. 바로 전쟁 위험을 불사한 핵개발 전략이다. 저자는 이 시기 북한 외교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것으로 봤다. 북한은 체제를 건 도박을 했고, 핵확산 방지 전략을 추구하던 미국과 국제사회는 커다란 골칫거리를 얻었다.

이 시기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한 배경은 안보 바람막이였던 소련의 이탈이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추구하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한 1990년 10월, 40년간 의지해 온 동맹관계가 소멸하면서 북한의 핵우산도 없어졌다. 당시 북한의 김영남 외교부장은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조ㆍ소 동맹조약은 유명무실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동맹관계에 의거했던 일부 무기들도 자체로 마련하는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으레 그랬듯이 북한의 외교전략 핵심은 위기조성에 있다. ‘위기조성→미국의 대응→중국의 개입→대화 복원→또 다른 위기조성’을 통해 전략적 이익을 실현하는 패턴이다. 북한은 이 과정을 통해 북핵 외교의 주도권을 잡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북한과의 대좌를 꺼렸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으며, 개혁개방에 치중하던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포착된 1989년 중국 베이징 채널을 통해 참사관급으로 제한적 접촉을 했다. 그러다가 북핵 문제가 본격화하면서 일회적이긴 하나 1992년 1월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과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차관의 고위급 협의로 발전하고, 북한의 NPT(핵확산방지조약) 탈퇴 등 북핵 위기 정점에서 북미 접촉은 고위급 정책 대화로 격상됐다.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와 강석주 외무성 부상의 94년 제네바 핵 담판이다. 이후 북핵 외교의 실패와 좌절 속에 트럼프 시대에는 괌 타격을 운운하는 대치를 겪으며 북미 정상회담에까지 이르렀으니 북한의 성공 가도는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핵을 통해 중국과의 동맹 복원도 끌어냈다. 1992년 개방노선에 따른 한중 수교 후 북한과 크게 소원해진 중국은 핵 위기에 직면해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였고, 북한은 군사, 외교적으로 중국을 뒷배 삼아 미국의 압박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수뇌부 스스로 대북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북한의 대중 입지는 탄탄하다. 저자는 이러한 북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고립무원의 북한은 이처럼 핵을 통해 북ㆍ미ㆍ중 전략적 삼각관계를 주도적으로 형성했고, 북미 제네바 합의라는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핵을 쥔 바람에 탈냉전기 동아시아의 역동적인 경제발전에 참여할 기회를 놓쳤다. 북한은 북핵 위기 당시 제재는 곧 전쟁이라고 했지만 제재는 지금 생활의 일부가 됐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핵개발은 양날의 검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 생존의 길을 찾아서
조병제 지음
늘품플러스 발행•303쪽•1만5,000원
이 책의 흐름처럼, 핵을 통해 수 십 년간 대단한 외교적 성공을 거두고 제재가 체화한 북한이 과연 지금에 핵을 완전히 포기할 동인이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도 북핵 실패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인지, 극적으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이 있을 것인지 머지 않아 드러날 참이다.
정진황 기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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