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헌재가 낙태죄 규정을 헌법불합치로 본 것은 다른 나라들이 인공임신중절(낙태)의 허용 범위를 점점 늘려가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상당수 국가들은 임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은 OECD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낙태 관련 정책을 가진 나라로 분류된다. 예비 부모가 돈이 없어서 낙태를 하는 등의 사회ㆍ경제적 이유를 허용하지 않는 OECD 국가는 한국과 이스라엘 등 5개국이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도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합법화로 돌아섰다.
성매매ㆍ대마초ㆍ안락사가 합법인 네덜란드는 유럽국가 가운데 가장 낙태에 관대한 국가로 분류된다. 낙태 허용 기간에 대한 법적 제한 없이 임부가 원하면 낙태할 수 있다. 다만 임신 13주 이후에는 정부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 병원이나 의원에서만 시행할 수 있다. 영국은 유럽 최초로 낙태를 합법화한 나라로,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사회ㆍ경제적 이유를 폭넓게 인정해 사실상 임부가 원하면 낙태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은 20~24주까지는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이 없는 시기라고 판단해 임부가 원할 때는 낙태를 허용한다.
프랑스는 임신 12주까지 임부 요청에 의해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임신부가 곤궁한 상황’에 처한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임부가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또 임신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낙태 정보 사이트가 운영되고, 결정 이후에는 매우 신속하게 과정이 진행된다.
독일도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할 수 있다. 1993년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12주라는 기간에 대해 위헌을 결정한 바 있는데, 이후 형법개정 논의에서 의사와의 상담 등 절차에 따를 경우 최종적으로 임부의 결정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현재까지 낙태죄를 규정하고는 있지만, ‘신체적 또는 경제적 사유’에 의해 모체의 건강을 명백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어, 사실상 비범죄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본인과 배우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통상 22주 전이어야 시술이 가능하다. 산아제한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은 낙태가 폭넓게 허용되는 나라다. 단 성별에 따른 낙태는 금지된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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