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진료비 부담을 낮추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이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재정안정 방안을 고려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10일 공개하면서, 초고령사회 등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해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종합적이고 지속가능한 제도적 혁신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종합계획에는 ‘노인 외래진료비 정액제’ 시작 연령을 현재의 65세에서 70세로 높이고 연 2,000만원 이하 금융소득에도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 등 재정안정을 위한 새로운 조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다수 담겼다.
이처럼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방향이 선회한 것은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건강보험의 당기 수지가 악화하고, 급격한 고령화의 진전과 더불어 사회에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건강보험은 연금처럼 미리 적립해 놓은 금액을 나중에 찾아 쓰는 방식이 아니므로 누적 적립금이 클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지난해 기준 누적 적립금도 20조5,955억원으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 의료 수요가 많은 노인 인구가 급증해 건강보험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재인 케어 시행에 따른 보장확대로 단기간에 지출이 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빨간 불이 켜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 상복부 초음파ㆍ자기공명영상(MRI), 상급종합병원 3, 4인실 입원비 등이 급여화되는 등 비급여의 급여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건강보험의 2018년 당기 재정수지는 1,778억원 적자를 보였다. 건보 재정이 당기 적자로 돌아선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적자 폭이 올해 2조2,000억원, 2023년 3조8,000억원, 2027년 7조5,000억원 등으로 불어나고, 현재 20조원가량 쌓여있는 건보 적립금도 2026년에 소진된다고 추산한 적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1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이 완료되는 2023년 이후에도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을 10조원 이상 유지할 수 있도록 재정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든든한 수입기반 확충이 중요하다고 보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적정 수준에서 건보료를 올릴 방침이다. 다만 1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이 마무리되는 2023년까지는 보험료율 인상 폭을 평균 3.2% 수준에서 계속 관리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대신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규모를 매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2007년부터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와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는 보험료 예상수입액을 적게 산정하는 편법으로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출 면에서는 요양병원 수가체계를 중증도 기준으로 개편하고, 이른바 사회적 입원을 줄이며, 노인 외래 정액제 연령을 상향하는 등 노인 의료비 증가에 대응하는 다양한 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의료 원가 파악으로 급여나 수가에 대한 지속적인 검증을 실시하고 사무장병원이나 면허대여 약국 등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건보 재정 누수를 막을 계획이다. 정윤순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불필요한 지출을 관리하고 재정 누수 방지 노력을 함께 해 재정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김민호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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