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에 빠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0일 채권단에 박삼구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모두를 담보로 내놓겠다는 자구안을 제출했다. 금호 측은 대신 5,000억원의 경영정상화 자금을 요청했는데, 산업은행과 금융당국은 일단 “시장의 평가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룹 지배 지분 담보로 건 금호아시아나
산은은 이날 “금호 측이 전날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한 자구계획안을 제출했다”며 세부내용을 공개했다. 자구안의 골자는 금호 측이 오너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 전체를 담보로 내놓고, 기타 보유자산도 매각해 지원자금을 상환할 테니 당장 정상화에 필요한 5,000억원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우선 금호 측은 박삼구 전 회장 부인과 딸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 4.8%를 채권담에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다. 금호고속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여서 그룹 경영권까지 내걸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현재 박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56.9%) 중 박 전 회장과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의 지분 42.7%는 이미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있어 실제 새로 제공하게 되는 담보는 4.8%뿐이다. 금호 측은 박 전 회장과 박세창 대표의 담보지분이 해지되면 추가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금호 측은 또 △박삼구 전 회장의 향후 경영복귀가 없을 거라는 점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항공기 수를 줄이고, 경제성 없는 노선을 정리하는 등의 사업 개편도 약속했다.
이 대가로 금호 측은 채권단에 유동성 해결을 위한 5,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동시에 경영정상화를 위해 산은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서(MOU)를 체결하고, 정상화 기간(3년) 동안 이행여부를 평가 받기로 했다. 3년 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산은이 그룹 핵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금호 측은 덧붙였다.
산은은 금호 측의 자구계획 검토를 위해 조만간 채권단 회의를 개최하는 등 관련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자구안이 채권단과 당국의 기준에 불충분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실제 담보로 제공되는 오너 일가 지분이 4.8%에 불과한데다, 당장 3년의 시간을 벌어보자는 지연전술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동걸 산은 회장은 금호그룹에 “시장이 신뢰할 만한 자구계획을 내놓으라”고 강조한 것으로 미뤄, 산은이 이날 이례적으로 자구계획을 언론에 공개한 것도 일단 시장에서의 평가를 확인해 보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금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차입금이 대부분 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형태로 시장에서 조달한 것인 만큼, 자구안에 대한 시장 평가를 우선 확인해보자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차입금, 시총 4배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외부 회계법인에서 감사 ‘한정’ 의견을 받은 이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작년말 기준 총 차입금은 3조1,630억원에 달한다. 10일 종가 기준 아시아나항공 시가총액(7,861억원)의 4배 가까운 규모로, 이중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 규모만 1조1,900억원에 달한다.
금호 측은 그간 차입금 상환을 위해 금융권 대출과 만기연장 등을 고려했지만, 최근 한정 감사의견 사태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자금 융통이 어려워진 것이다. 금호 관계자는 “채권단 지원으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회복되면, 다시 만기연장 등으로 차입금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5,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숨통을 트기 위한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금호 측은 이날 산은에 자구안을 제출한 후 입장자료를 통해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아시아나항공을 정상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산은과 협의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성심 성의껏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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