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 막을 나무 사라져 적은 비에도 위험
“농기계 지원 요청했는데 언제 올지 아득
“정부지원 비현실적” 곳곳 불만 터져 나와
10일 오전 산불로 쑥대밭이 된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 주민들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밤부터 이날 오전까지 내린 13㎜ 비로 산불 재발화 위험이 사라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주민들은 구멍 난 지붕과 벽과 야산에 방수포를 덮으며 힘겨운 하루를 보냈다. “토사와 빗물을 막아줄 나무와 수풀이 모두 타버린 탓에 적은 비에도 산에서 흙이 쓸려 내려올까 걱정”이라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어두훈(61) 통장은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심각한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장천마을은 물론 고성 용촌리, 원암리 등 피해지역마다 손볼 곳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라 복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동해안을 휩쓴 대형 산불 뒤, 불과 40~50㎜ 비에도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2차 피해우려를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은 비가 이쯤에서 그치길 바랄 뿐이었다.
더구나 일주일 가까이 한뎃잠을 자고 있는 가운데 이날 봄비로 기온마저 뚝 떨어져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강릉 옥계면 남양리와 고성 토성면 주민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한해 농사를 짓기 위해 준비하던 볍씨 수백㎏은 물론 농기구, 축사가 하루아침에 못쓰게 됐기 때문이다. 남양리 주민 최모(68)씨는 “축사가 무너져 소들을 나무에 매어 놓고 있는 집들도 있다”며 “급한 대로 농기계와 농경지 근처에 컨테이너 박스라도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언제 도착할 지 모르겠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피해 현장 곳곳에선 “정부지원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재민들은 “정부가 제시한 지원금으론 집을 다시 짓기는커녕, 이자도 감당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마저도 집이 반파됐을 경우 지원금이 반토막으로 줄고, 세입자들에 대한 지원은 6개월간 300만원 이내로 제한되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앞서 8일 최문순 강원지사가 국회를 찾아 “주택 복구비의 70%를 국비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급기야 참다 못한 고성지역 피해 주민들이 이날 오후 고성군 토성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모임을 갖고 비상대책위를 꾸려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비대위는 또 원암리 전봇대 개폐기에서 시작된 이번 산불 원인이 관리 부실로 드러나면 한국전력을 상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산림청은 4일부터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피해면적을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1,757㏊로 추정했다. 아리랑3호 위성영상 분석 결과, 산림당국이 어림잡아 집계했던 530㏊보다 3배 이상 늘었다.
지역별로 강릉 옥계ㆍ동해 망상동 일대 714.8㏊가 잿더미가 됐고, 고성ㆍ속초와 인제 남면 산불의 피해면적은 각각 700㏊, 342.2㏊로 잠정 집계됐다. 이 불로 주택 등 건축물 2,567채가 피해를 입었고, 인제를 제외한 4개 시ㆍ군에서 1,053명이 보금자리를 잃었다.
고성ㆍ속초ㆍ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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