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베리아의 소도시 시장선거에서 당원의 의무에 등 떠밀려 할 수 없이 출마, 선거 운동도 거의 하지 않은 20대 주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막강 집권 여당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당선은 서류미비 등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유력 야당 후보의 출마를 방해한 푸틴 정권에 대한 시민의 반감을 보여준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여당 후보의 압승이 당연시되던 선거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달 하순 실시된 인구 8만의 이르쿠츠크주 북서쪽 우스티일림스크시 시장선거에서 야당인 자유민주당(LDPR) 후보로 출마한 주부 안나 셰키나(28)가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로 출마한 시의회 의장을 꺾고 당선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9일 보도했다. 현직 시장의 사임에 따른 선거였다. 셰키나 후보의 표율은 44%로 여당 후보를 6포인트 앞섰다.
현지 신문에 따르면 셰키나는 대학 중퇴자로 6살난 아들과 함께 사는 싱글맘이다. 일정한 직업이 없으며 직함은 주부다. 그는 SNS에 "당(원)의 의무여서 할 수 없이 출마했다"고 밝혔다. 선거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경기둔화와 연금 수급개시연령 연장 등이 선거 이슈로 애초 야당 출신의 전직 시의원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이 전직 시의원을 포함, 야당과 무소속 후보 8명이 현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서류미비' 등의 이유로 출마를 거부당했다. 이런 출마 방해에 반발한 표가 셰키나에게 몰린 것으로 보인다.
셰키나 시장은 당선 후 페이스북에 "내가 이겼다. 해냈다. 이겼다"며 환호하는 글을 올렸다.
러시아에서는 유력한 야당 후보가 출마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2018년 3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政敵)으로 통하는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출마가 허용되지 않는 바람에 푸틴 대통령이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당선했다.
그해 가을에 실시된 연해주 지사선거에서도 한때 여당 후보의 득표율에 1.5 포인트 차이까지 육박했던 공산당 후보가 재선거에서 출마를 거부당해 푸틴 정권이 지원한 여당 후보가 압승했다.
셰키나의 당선을 "여당에 대한 시민의 반발이 무명 후보가 승리를 거두게 할 정도로 커진 증거"로 해석하는 정치 분석가도 있다.
푸틴 정권과 통합러시아당의 지지율은 작년 여름 연금개혁 발표를 계기로 폭락한 이래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9월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인기없는 현직 지사 5명을 퇴진시키고 정권 간부를 지사선거에 출마할 지사대행으로 임명하는 등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
이르쿠츠쿠의 민간 선거감시단체 '고로스'를 이끌고 있는 알렉세이 페트로프는 "연금개혁과 야당후보 배제에 대한 시민의 불만은 전국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무명 주부의 승리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며 앞으로도 파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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