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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사건 미군 개입 진상규명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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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사건 미군 개입 진상규명 필요하다”

입력
2019.04.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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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비대 미군자문관이 진압계획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1948. 5.15 Mootz 촬영, NARA, 사진 왼쪽)과 1945년 5월 15일 제주항에서 촬영된 미군 함정(Mootz 촬영, NARA). 제주도의회 제공.
한국경비대 미군자문관이 진압계획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1948. 5.15 Mootz 촬영, NARA, 사진 왼쪽)과 1945년 5월 15일 제주항에서 촬영된 미군 함정(Mootz 촬영, NARA). 제주도의회 제공.

제주 4ㆍ3사건 당시 미군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다양한 자료와 증언 분석을 통해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제주도의회 정책연구실은 최근 발간한 ‘4ㆍ3사건 미군이 얼마나 개입했나?’라는 제목의 정보 소식지 ‘정책차롱’에서 ‘미군이 제주도를 거대한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바꾸어 놓는데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언급한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주장했다.

정책연구실은 4ㆍ3사건 당시 제주도에서 미군 개입 사례의 유형으로 주한 미군 사령관과 고문관들이 한국경찰과 경비대(대한민국육군 전신)에게 직접 명령을 하달했고, 제주의 미군 고문단들이 실제 공중과 육상작전을 관리, 감독한 점을 들었다. 정책연구실은 또 제주도에 주둔한 미군 부대가 우리 측 진압군에게 군수지원 및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강경 진압을 지휘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책연구실은 4ㆍ3 당시 제주도 주둔 병력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프랑스 파리 7대학의 버틀랜드 로에너 교수의 논문과 당시 미군 측의 비밀문건, ‘주한미군사’ 사료(HUSAFIK), 미군 증언 등을 토대로 1947년과 1948년에 제주도에는 미군이 최소 100명(중대 규모)에서 최대 1,000명(연대 규모)까지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한국전 참전 미군인 조셉 그로스만은 “1947년 봄에 6주 동안 20보병연대 제2대대의 500~1,000명의 미군 병력이 제주도로 파견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자신의 부대가 일본군이 사용했던 목조로 된 1층 막사에 머물렀다는 등의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군의 개입 형태와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어 당시 제주도에 주둔했던 미군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세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정책연구실은 지적했다.

도의회 정책연구실측은 “현재까지 밝혀진 미군의 지휘 책임과 함께 특별히 미군 병력이 어느 정도 규모로 제주도에 주둔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미국의 개입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척도가 된다”면서 “반드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하고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민구 도의회 4ㆍ3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오는 6월 UN에서 개최되는 4ㆍ3심포지엄을 계기로 향후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러시아에 있는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 수집을 통해 4ㆍ3 당시 미군의 개입 정도를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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