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사장은 다섯 번 바뀌었다. 리더가 바뀌면 추진 사업들이 뒤엎어지는 풍토 속에서 비씨(BC)카드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똑 부러지게 예스(Yes)도 노(No)도 하지 않는 나라, 몇 십 년간 잠재력만 거론되는 인도네시아에서의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비씨카드가 인도네시아 디지털 간편결제 시장 공략의 시동을 건 것이다.
비씨카드는 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현지 최대 국책은행 만디리은행과 QR코드 결제 등 디지털결제 서비스 도입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9일 밝혔다. 양사가 함께 구축한 ‘인도네시아판 비씨카드’ 서비스 개시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였다. 그간 비씨카드는 만디리은행과 △카드결제 매입 시스템 구축 △카드 가맹점 인프라 확대 및 단말기 공급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 디지털결제 시대를 대비해 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디지털기반 결제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약 186억달러이던 디지털결제 거래 규모가 5년 뒤 두 배(약 372억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1만7,000개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보니 디지털 결제가 급성장할 수밖에 없는 토대를 갖췄다. 실제 인도네시아에선 교통수단, 세탁, 배달, 청소, 심지어 안마까지 현금을 미리 충전했다가 계산하는 현금기반 디지털 선불 결제가 대세다.
최근엔 은행 계좌기반 디지털 간편결제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다. 은행 계좌 보유 인구 비율은 2011년 20%에서 2017년 50%로 급증세다. 이들은 간편결제 시장의 잠재고객이자 비씨카드와 만디리은행의 공략 포인트다. 계좌 보유 인구 비중이 늘면 현재 중국 등 글로벌시장에서 보편화하고 있는 QR코드 결제 등 계좌기반 거래수단이 성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계좌기반 디지털결제는 현금기반 디지털결제보다 수익성도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건당 거래금액이 계좌기반(신용카드 기준)은 7만4,000원인데 비해, 현금기반(선불)은 1,000원에 불과하다. 신용카드 기준 건당 거래금액은 우리나라(4만4,000원)보다도 높다. 인도네시아에서 신용카드는 부자들만 사용하는 결제수단으로 여겨져 아직 보급률이 낮지만, 비씨카드의 기술력과 만디리은행의 고객 자산이 어우러지면 승산이 있다는 게 비씨카드의 전망이다.

비씨카드의 인도네시아 QR결제는 사실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단말기 19만대가 보급됐다. 변승현 비씨카드 인도네시아법인장은 “주말 하루 이용 건수 20만건, 건당 평균 6만원가량 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작은 좋은 셈이다.
이번 협약으로 비씨카드와 만디리은행의 협력은 더욱 탄탄해진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제시하는 디지털결제 표준규격(통일성 호환성 투명성 보안) 대부분이 현지에서 비씨카드가 수행 중인 업무 범위와 맞닿아 있어서다. 비씨카드는 만디리은행이 원하는 결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한편, QR코드 결제도 현지 사정에 맞춰 보안 솔루션을 개발해 제공하게 된다. 비씨카드는 인도네시아를 발판 삼아 베트남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문환 비씨카드 사장은 “서양의 금융 시스템을 패키지로 받아들였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한국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사실 큰 모험”이라며 “비씨카드가 보유한 디지털결제 역량을 적극 활용해 동남아 시장을 선도하고 글로벌 결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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